
"자, 시작해보자!"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이 막 문을 연 지난 18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코엑스 A홀에서는 들뜬 목소리와 함께 관람객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시장 바깥은 평일 아침 이른 시각임에도 입장 팔찌를 받기 위해 입구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A홀에 들어서자마자 부스 위치가 적힌 지도를 펴고 원하는 출판사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고, 곳곳에는 작가 사인회와 북토크를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잠깐만 보고 올게"라는 말이 오가고, 이내 "이따 전화할게"라는 인사도 들렸다. 이동형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관람객도 적지 않았다.
도서전을 3년째 찾았다는 프리랜서 이 모 씨(31)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이 매력이 있다"며 "도서 할인이 크지는 않지만, 여기서만 받을 수 있는 한정 굿즈와 사인본이 있고, 여러 출판사 부스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믿을 구석'이다. "힘들 때, 외로울 때, 당신이 기대는 '믿을 구석'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 한쪽 주제 전시 코너에 작은 정육면체 상자가 여러 개 배치됐다.
작가 120여명과 독자들이 고른 책 400여권이 각 상자에 숫자와 문장, 추천인의 이름과 함께 전시됐다. 한쪽에는 '믿을 구석 수령처'도 마련돼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작은 씨앗을 받아가 자신만의 '믿을 구석'을 심어볼 수 있었다.

올해 도서전의 주빈국은 대만이다. A홀 입구 오른편에 마련된 대만관에는 '대만감성'이라는 주제로 주목할 만한 작가들, '한국인 최애 타이완 간식 & 선물' 등과 도서들이 전시됐고, 정오 무렵에는 타이완문학상을 받은 작가 장자샹(KA-SIÔNG TIUNN)이 이끄는 밴드 촹콰렁(Tsng-kha-lâng)의 음악 공연도 열렸다.
올해 국제관에는 독일, 프랑스, 태국, 영국 등 16개국 100여개 출판사가 참여해 A홀 곳곳을 채웠다. 전체 도서전 규모도 커졌다. 지난해에는 19개국 452개 출판 관련 단체가 참가했으며, 올해는 17개국 535개 출판 관련 단체가 함께했다.
기독교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김 모 씨(24)는 "평소라면 책을 안 살 법도 한데, 도서전에 오면 한두 권씩 사게 된다"며 "다양한 출판사도 많아 몰랐던 책과 함께 출판사들도 알 수 있어 독서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전시도 열렸다. '지혜', '재미', '즐거움', '아름다움' 등 4개 분야 40종의 추천 도서가 진열됐고, 이날 오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시상식에 참석해 각 분야 대상 수상자들에게 상패를 수여했다.
선정된 책은 정민 교수의 '다산의 일기장'(지혜), 산호 작가의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재미), 김동석 작가의 '꽃에 미친 김 군'(즐거움), 이유빈·신소현 디자이너의 '산 239'(아름다움)였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좋은 책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 닿아 독자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 되는 책"이라며 "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좋은 책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고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다만 도서전을 둘러싼 시각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 같은 날 오전 전시장 바깥에서는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작가회의 등 9개 단체로 이뤄진 '독서생태계 공공성 연대'(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국제도서전의 '믿을 구석'은 공공성"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연대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도서전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지분을 일부 인사들이 다수 보유하게 된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출협은 출판계 전체로부터 도서전 운영을 위임받은 관리 기관일 뿐, 도서전이라는 공적 자산을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양도하거나 처분할 수 있는 소유권을 지닌 주체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도서전에 참가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사유화는 정말 큰 문제"라며 "도서전에 이렇게 많은 출판사와 독자들이 있는데 그것을 한 단체 또는 개인의 몫으로 가져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운영상의 혼선도 지적됐다. 입장권은 얼리버드(사전 구매) 단계에서 조기 매진돼 현장 입장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어려웠다. 출판업계에서는 신청 수보다 적게 부스가 배정된 사실이 통보 형식으로 전달됐다며,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출판사 관계자는 입장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입장권 조기 매진으로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겼다"며 "모두가 즐겨야 할 도서전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서전 운영 정보도 부족해 참여하는 과정에서 곤란한 점도 많았지만, 독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에 감수할 수 있었다"며 "내년에는 입장권과 안전 문제는 분리해 접근하고, 모든 사람이 올 수 있도록 개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연간 독서율은 43%에 그쳤다. 2013년 대비 30%포인트가량 줄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든 시대에도 올해 도서전에는 15만여명이 몰릴 전망이다.
사유화 논란과 입장권 문제 속에서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각자만의 이유로 방문하고, 책을 들여다보고, '믿을 구석' 하나쯤은 떠올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