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 관세 인상을 예고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건설 경기 침체와 중국산 저가 물량 유입으로 급격한 위축세를 겪는 가운데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을 비롯한 업계 전반의 전방위 압박은 더욱 심화될 조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US스틸 공장에서 열린 연설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관세는 오는 4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그는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도 해당 방침을 올리며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조치는 국내 철강업계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분석된다. 업계서는 수익성이 높은 미국 시장에서 관세가 2배로 늘어날 경우, 수출 중단과 다름없는 수준의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올해 국내 철강업체의 미국 수출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4월 대미 철강 수출액은 13억84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2% 감소했다. 수출 부진의 배경으로는 국가별·품목별 차등 관세와 수입 쿼터를 폐지하고,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의 일괄 관세를 적용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환이 지목된다.

미국은 전체 철강 수출에서 약 13%의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29억달러어치 철강을 수출해 대미 수출국 순위 4위에 올랐다. 주요 수출 품목은 강관·열연강판 등 고부가 제품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관세가 다시 50%로 인상될 경우, 수익성 악화는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내 철강업계가 이미 건설 경기 침체와 중국산 저가 물량 유입 등으로 급격한 위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4월 인천 철근 공장의 가동을 한 달간 중단했고, 동국제강도 오는 7월부터 약 한 달여간 인천 공장의 '셧다운'을 예고했다. 일부 중소 제강사들의 가동률은 50% 안팎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는 감산을 통해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내수 기반이 무너진 가운데 수출길까지 좁아질 경우, 업계 전반의 전방위 압박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국내 철강업계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시장이었지만, 이번 고율 관세로 수출이 막히면 수익성 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내수는 이미 중국산 저가 제품과 건설 경기 부진으로 수요 기반이 무너진 상황이어서, 수출마저 타격을 입을 경우 업계 전반이 자구책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료비와 에너지비는 지속적으로 오르는데, 제품은 팔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라며 "업계 전체가 뚜렷한 방향성을 잃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번 미국의 통상 정책 여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철강 관세 인상에 대응해 보복 조치를 공식 예고한 상태다.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7월14일부터 미국산 항공기, 자동차, 부품 등 최대 950억 유로 규모의 보복 관세를 발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발효 시점은 상황에 따라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EU의 대응이 본격화되면 국내 철강업계의 유럽 수출 여건도 크게 악화할 수 있다. EU는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에 대응해, 일정 물량 이상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일정 물량을 넘는 수입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품목별 쿼터제를 기반으로 한다. 유럽은 한국의 주요 철강 수출처 중 하나로, 세이프가드 쿼터가 축소되면 국내 철강업계에도 직접적인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의 대응 역시 국가 간 협상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개별 기업이 미리 대응할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라며 "향후 정부의 협상 방향에 따라 긴밀히 협조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저널리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