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예술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되짚어봤을 때 연극 예술은 항상 그 가치를 지켜왔습니다."
'왓츠 넥스트 프로젝트'(WHAT'S NEXT PROJECT)에서 예술감독을 맡은 정범철 연출가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열린 '왓츠 넥스트 프로젝트' 제작발표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정 예술감독은 "경제가 어려우니 국민은 문화예술 지출을 먼저 줄였고, 유튜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비롯한 '방구석 콘텐츠'의 발전으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감소하는 추세"라며 "청년 연극 예술인들이 우리 연극의 미래"라고 덧붙였다.
'왓츠 넥스트 프로젝트'는 지난해 '인큐베이팅 팩토리'로 시작해 젊은 연극인을 발굴해온 창작지원 사업으로, 올해 이름을 바꿔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올해 선정된 극단 창창, 스튜디오 42, 극단 문지방의 창작진과 배우가 참석해 각 작품을 소개했다.

극단 창창의 '프로젝트 르완다'는 1994년 벌어진 르완다 대학살 생존자들의 600쪽 분량의 녹취록에서 출발했다. 동생을 잃은 다큐멘터리 PD '현수'가 르완다 생존자들의 녹취록을 만나 삶을 회복하는 여정을 담았다.
추태영 연출은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와 진정한 화해를 이룬 피해자의 고백이 담긴 녹취록을 읽고 믿기 어려웠다"며 "그 정도로 자기 삶을 파괴한 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작품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현수' 역을 맡은 박도하 배우는 "연습을 거듭하며 '처절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서 '살아남은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생각이 확장됐다"며 "관객도 작품을 관람할 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스튜디오 42의 '연극 합체'는 박지리 작가의 청소년 소설 '합체'를 원작으로 한다. 왜소증 아버지를 둔 쌍둥이가 키가 작다는 고민을 안고 살아가다 동네 약수터에서 만난 '계도사'로부터 키 크는 수련법을 전해 듣고 계룡산으로 떠나는 모험담이다.
박소영 연출은 "'연극 합체'가 겉으로는 재미있고 귀여운 이야기지만, 장애를 가진 아버지에 관한 사랑과 그런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런 마음을 만든 사회적 압박, 그리고 압박으로 정해지는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작품에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연극 합체'는 삼일로창고극장 자체를 무대로 활용하는 이동형 연극이다. 삼일로창고극장 옥상은 계룡산, 스튜디오는 집, 마당은 운동장으로 설정해 관객이 극장 내외부를 따라 이동하며 이야기를 체험한다.
박 연출은 "이동형 연극을 선택한 만큼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삼일로창고극장 테라스에서 아이들이 산을 오르고 형제 동굴을 찾아가는 여정을 바라보는 과정은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극단 문지방의 '하붑'은 박한별 연출이 이끈다. 작품은 미국 애리조나를 배경으로, 아이를 잃었다고 믿는 한 남녀가 아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극단 문지방은 '하붑'으로 미국 서부라는 낭만적 배경에서 한국적인 부모 자식 관계의 본질을 고찰한다.
박 연출은 "부모에게 받은 환경과 유전적인 성향이 너무 절대적이라고 느껴지는 시간이 있었다"며 "극한의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전했다.
'하붑'은 세대 간 갈등을 넘어 각 개인을 이해하려는 데 방점을 찍는다. 함께 작업한 박태양 PD는 "세대라는 말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게으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며 "각자의 연령대에서 개개인을 이해하려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각 작품에 따라 다른 무대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세 팀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극장을 해석해 작품과 연결했다. '프로젝트 르완다'는 원래 객석으로 쓰였던 계단형 공간을 감정의 축으로 삼아 시공간적 대비를 준다. '연극 합체'는 극장 내 여러 공간을 이동하며 환상을 심어주고, '하붑'은 작은 극장에서 에리조나의 광활한 대지를 표현하는 도전을 시도한다.

정 예술감독은 각 작품의 주제와 형식이 드러내는 개성을 하나씩 짚으며 기대감을 전했다.
그는 "'하붑'은 보편성을 확보한 극 형식으로 많은 공감대를 끌어내리라 생각하고, '연극 합체'는 탄탄한 스토리의 소설을 바탕으로 이동형 공연이라는 색다른 시도로 재미를 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프로젝트 르완다'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이며, 픽션과 논픽션이 결합한 작품"이라며 "인간의 용서와 화해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왓츠 넥스트 프로젝트'에 선정된 세 작품은 오는 15일부터 차례로 삼일로창고극장 무대에 오른다. '프로젝트 르완다'는 15일부터 18일까지, '연극 합체'는 22일부터 25일까지, '하붑'은 29일부터 6월 1일까지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