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팝콘 대신 응원봉을 든 관객들이 침체한 극장가의 객석을 채운다. 가수와 배우들의 무대를 영화관에서 만나는 '공연실황 영화'가 인기를 얻으며, 위축된 극장가에 새로운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달 발간한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 장르 영화는 2019년 17편에서 2024년 43편으로 152% 늘었다. 또 지난 1월부터 '(여자)아이들 월드투어 '아이돌' 인 시네마', '김재중 20주년 기념 콘서트: 플라워 가든' 등 10편 가까이 공연 장르 영화가 개봉하며 올해도 40편 내외로 극장에 걸릴 전망이다.
공연 장르 영화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 후 장기화한 극장가의 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영진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 전체 매출액은 1조1945억원으로 전년 대비 5.3% 줄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전체 매출액 평균과 비교하면 65.3% 수준이다. 전체 관객 수도 전년보다 1.6%(201만명) 줄어 1억2313만명을 기록해 팬데믹 이전 3년간 평균에 55.7% 수준으로 나타났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등장과 높은 영화 티켓 가격으로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할까'라는 의문이 사람들에게 많이 퍼졌다"며 "게다가 극장에 갔을 때만 충족되는 영화도 줄어 공연 실황처럼 특화된 콘텐츠가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연실황 영화는 매출액에서도 성장세를 보였다. 영진위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 장르는 2019년 장르별 집계를 시작한 후 지난해 264억원으로 최다 매출액을 기록했다. 지난해 개봉한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은 공연실황 영화 최초로 매출액 100억원을 돌파하며, 해당 장르에서 역대 가장 흥행한 작품으로 꼽혔다.
이런 공연실황 영화의 성장에는 '일반 관객'이 아닌, N차 관람과 굿즈 소비 등 적극적인 소비 패턴을 보이는 팬덤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CJ CGV 집계에 따르면 '임영웅: 아임 히러오 더 스타디움'을 2번 이상 관람한 관객의 비율은 전체의 17.3%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롯데시네마가 연 '2024 롯데시네마 연말 대상'에서는 '김준수 콘서트 무비 챕터 원: 레크리에이션'을 총 47회 관람한 관객이 '한우물상'(동일 작품 최다 관람자)을 받았다.
영화관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N차 관람을 권하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CGV는 지난달 개봉한 '이찬원 콘서트 찬가: 디어 마이 찬스'의 현장 이벤트에서 싸인 포스터, 스페셜 포스터, 스티커 세트 등의 기간별로 다르게 굿즈를 증정했다. 메가박스는 지난해 10월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 개봉을 기념해 공연 상품권, 영화 초대권 등을 증정하는 N차 관람 이벤트를 열었다.
또 공연실황 영화는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입소문 마케팅이 활발하고, 기존 팬층이 형성된 IP를 기반으로 제작돼 일반 영화보다 '흥행 리스크'도 낮은 편으로 해석됐다.
영진위는 보고서에서 "애니메이션 영화와 공연실황 영화는 흥행 성공 여부가 팬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며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이 극장에서 큰 흥행을 거둔 만큼 앞으로 이런 유형의 영화가 더 활발하게 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다만 공연 장르 영화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은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영진위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 장르 영화의 매출액 점유율은 2.2%, 관객 점유율은 0.9%에 그쳤다.
공연 실황 영화의 티켓 가격은 일반 영화보다 약 2배 높으며, 일부 콘텐츠는 7만원 대에 책정됐다. 이런 높은 가격은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되지만, 전반적인 극장 관객 감소 문제 등 영화계의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영화관은 영화의 흥행이 우선이며, 핵심 수익은 여전히 영화에서 나온다"며 "공연실황 영화는 위기를 해결하는 대안보다는 새롭게 형성된 시장 중 하나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평론가는 "공연실황 영화는 공연장에서 놓친 부분을 스크린으로 볼 때 더 선명하게 보이는 장점이 있어 극장 입장에서 좋은 자구책"이라며 "다만 공연계도 다양성이 받쳐줘야 하는데 대형 공연 위주로만 영화화될 경우 작은 규모의 공연들은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