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간으로 인정받기를 꿈꾸는 로봇이 주인공이다.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1999년 작품인데, 원작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1976년에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이 영화에서 로봇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 뒤로 인공두뇌에 버그가 생긴다. 인간들처럼 창조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나무를 깎아 예쁜 공예품을 만든다거나 새로운 발명품을 고안해낸다거나 등등. 그렇게 해서 적잖은 돈을 벌어들인다.

어느 날, 주인이 로봇에게 '네가 번 돈의 절반을 줄 테니 맘대로 써라' 하고서는 로봇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준다. 그 뒤로 로봇은 주인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서도 원하는 곳에 돈을 쓸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 로봇과 인간 가족 사이에 200여 년 동안 펼쳐지는 감동적인 드라마가 주된 서사이지만(또한 로봇이 자신의 몸을 조금씩 인간처럼 바꾸어나가는 과정도),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앞서 얘기했듯이 로봇이 자기 명의로 계좌를 가진다는 묘사이다. 즉, 인간 사회에서 로봇도 법적인 지위를 부여받는 셈이다. 과연 미래에는 정말 그렇게 될까?

2022년에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한 미술경연대회에서 AI가 그린 그림이 디지털아트 부문 1등상을 받았다. 그런데 수상자는 자신이 직접 그린 게 아니라 미드저니라는 AI에게 명령어만 입력했을 뿐이라고 밝혀서 논란이 일었다.

아무튼 만약 이 그림을 구매하고자 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그림값을 지불해야 할까? AI를 만든 사람과 AI에 명령어를 입력해 결과물인 그림을 만들어 낸 사람 중 누굴까? 혹은 둘 다에게 돈을 준다면 어떤 비율로 나누어야 할까?

사실은 이와 관련한 논쟁이 지금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AI가 그림을 만들면서 '내 그림을 참고했다'고 주장하는 작가들의 저작권 소송까지 얽혀서 양상이 아주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최소화하는 솔루션은 무엇일까? 나는 AI에게 제한적으로라도 법인격을 부여하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 AI 이름으로 된 계좌에 돈을 넣고, 그걸 어떤 비율로 분배할지는 당사자들끼리 별도로 논의해서 정하면 되는 것이다. 일종의 공탁금이라고나 할까.

최근 들어 AI들이 잇달아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챗GPT는 이미 글 쓰는 사람들이 보조작가처럼 이용하고 있으며 미드저니나 DALL-E가 그려주는 그림 수준도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중이다. 여기에 더해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Sora라는 AI가 새롭게 등장했는데, 마치 직접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놀라운 해상도에 벌써부터 해당 분야 실직자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작권을 필두로 한 온갖 법적 논쟁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은 불문가지다. AI로봇에게 법인격 부여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은 더 이상 SF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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