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연장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인생이 바뀌었다고 느껴지면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새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거나 새로운 시각이 열리고, 모르던 걸 이해하는 순간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 홍지원 PD

뮤지컬 '실비아, 살다' 공연 사진. 사진 = 공연제작소 작작
뮤지컬 '실비아, 살다' 공연 사진. 사진 = 공연제작소 작작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서 공연제작소 작작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공연제작소 작작은 조윤지 작·연출, 김승민 작곡가, 홍지원 PD가 모인 창작 집단이다. 작작은 뮤지컬 '실비아, 살다'(2022 초연, 2023 재연),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2024) 등을 선보였다.

'실비아, 살다'는 미국 시인·소설가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생애와 창작에 대한 갈망, 자살 강박을 다뤘다. '키키'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키키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주변인들과 이해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을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담아냈다.

'키키'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마음의 피부가 벗겨진' 것 같다고 표현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전체 성격장애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불안정한 대인관계, 반복적 자기파괴 행동, 극단적 정서변화와 충동성을 보인다. 자해 시도나 병원 입원률이 높고, 자살 위험률도 높다. 주인공 키키는 버림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동시에 만성적으로 공허함을 느낀다. 사소한 실수로도 '화염방사기로 불을 쐰 듯한' 극심한 불안, 강박에 빠진다.

그러나 키키는 변증법적 치료를 통해 본인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고, 상담사 에단의 조언으로 자해 충동이 들 때 얼음을 쥐며 마음을 가다듬는 법을 배운다. 자식의 인격장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엄마(아빠) 앞에서도 키키는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아픔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며 서로를 이해한다.

전작인 '실비아, 살다'의 주인공 실비아는 삶을 '편도행 기차 여행'으로 비유한다. 실비아는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부터 지속적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그는 8살 때 이미 시를 썼을 만큼 뛰어난 문인이었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류' 시인, '미성숙하고 거친 어조'라고 격하당했다. 더 나아가, 결혼 이후에는 창작자로서 집중할 수 없는 환경, 남편인 테드 휴즈의 외도, 생활고 등 여러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실비아가 삶을 포기했기 때문에 31세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한 건 아니다. 극은 실비아의 자살 시도를 '나로 살게 하는 확인'이자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시작된 기차 여행을 멈출 '비상 정차'로 비유한다. 실제 실비아 플라스의 지인이자 테드 휴즈와 절친했던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저서 '자살의 연구'에서 실비아의 자살 시도를 살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도전으로 해석했다.

두 작품 모두 여성혐오, 차별, 인격장애를 비롯한 정신과 질병 등 우리가 흔히 마주할 수 있지만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주제들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교훈을 강조하거나 무겁고 진지한 장면만 이어지지도 않는다. 관객들은 웃고, 울며 어느새 키키와 실비아에게 공감하고, 우리가 주목하지 않던 순간을 이해한다. 조 작·연출은 "드라마는 강요 없이 자연스럽게 다른 입장도 생각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단체 포스터. 사진 = 공연제작소 작작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단체 포스터. 사진 = 공연제작소 작작

"'키키'를 키키답게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 홍지원 PD

작작은 더 나아가 기획·운영적으로도 역지사지를 시도했다. '키키'는 적극적으로 공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1달 남짓한 기간 동안 휠체어석뿐만 아니라 수어 통역과 사전 대본 열람, 시각 장애인을 위한 터치 투어(무대 위 세트, 소품 동선 등 공연 정보를 미리 제공하는 프로그램), 조명 등 신체적·정신적 자극을 완화한 릴렉스드 퍼포먼스까지 진행했다. 배역의 성별을 지정하지 않은 젠더 프리 캐스팅도 같은 맥락이다.

준비부터 운영까지 쉬운 게 없었다. 조 작·연출은 "기존 공연과 접근성 보완까지 여러 버전을 준비해야 했다"며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 모두가 힘들었을 거다"라고 웃었다. 홍 PD도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뮤지컬의 접근성 보완 관련 선례를 찾아봤는데 정말 없었다"고 짚었다. 김 작곡가는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컨텐츠를 느끼는 방법이 다 다르다는 걸 느꼈고, 여러 감각을 활용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필요성을 느꼈다. 이날 2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 동안 세 사람은 모두 한결같이 '해야 된다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세 사람은 한동안 각자의 일에 집중하며 다음 활동을 준비할 예정이다. 조 작·연출은 "(공연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음 계획을 이야기할 여력은 아직 없다"면서도 "현재 개발 중인 대본이 두 개 정도 있어, 여력이 생긴다면 고민해보려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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