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충전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LPG충전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통한 대외적 긍정 이미지 조성 뒤에는 13년간 배상받지 못한 3만 명의 피해자가 존재한다.

지난 23일 전국개인택시조합(이하 조합) 소속 개인택시 운전기사 3만1380명이 SK가스 등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담합을 진행한 업체 6곳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손해배상 소송(이하 소송) 1심 변론(이하 변론)이 진행됐다.

이 소송은 지난 2010년 제기된 이후 13년째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최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가격담합에 가담한 E1을 상대로 제기된 같은 취지의 소송이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얻어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앞서 SK가스, SK에너지, E1, GS칼텍스 등 LPG 수입·공급업체 6곳은 LPG 가격 자유화 시행 이후인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약 6년간 가격 담합을 진행했다. 이 사실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2010년 4월 가격담합 업체에 총 668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이후 전국개인택시기사조합 등 관련 단체들의 잇따른 소송으로 번졌다.

이날 변론은 손해배상액 계산을 위한 감정 결과 지연으로 인해 원고·피고의 기존의 입장은 유지된 채 진행됐다. 손해배상금 책정 기준인 손해액 보충감정 결과가 이날 변론기일까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액 산정을 위해서는 손해를 입증할 △실제 사용량 △손해액 기준이 되는 가격담합 감정 결과(정상 가격과 담합 가격의 차이) 두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이 중 실제 사용량은 택시기사들의 유류 카드 결제 내역을 기반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유가보조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손해 입증 보충감정 결과 산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 소송은 감정인 지정만 1년 3개월이 걸렸고, 감정 결과에 원고 측과 피고 측이 재감정을 요청하며 시일이 소요됐다. 보충감정 결과는 이 소송 진행이 이례적으로 오래 걸리는 이유다.

감정결과는 그 값에 따라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이 달라지므로, 이 재판의 가장 중점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E1이 진행한 LPG 가스 가격담합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핵심 요점으로 작용했다.

이날 변론에서 논의된 요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3만여 명에 달하는 원고의 '주민등록 등·초본' 요구, 또는 '위임장의 실제 효력' 여부였다. 소송이 장기화하며 원고 중 조합을 탈퇴하거나 사망한 사람 등이 생겨나 원고 전체를 특정할 수 없어졌고, 사망자의 경우 소송을 승계받을 자녀들에게 소송 위임장을 다시 서명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피고측 대리인(변호사) 역시 이날 변론에서 "소송법상 당사자 본인이 위임을 직접 해야하는데, 협회의 집행부가 회원으로부터 과연 이 사건에 대한 위임을 받았는지 매우 불분명하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이 같은 피고측 주장은 '시간 끌기'라는 지적이다. 은퇴 후 택시 운전으로 전업하는 등 원고가 비교적 고령의 연령대인 경우가 많고, 소송 장기화로 사망하거나 조합에서 탈퇴하는 원고의 수가 더 늘어나 손해배상을 해야 할 인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SK가스 등 LPG담합 기업들이 시간을 끌어서라도 '담합행위로 인한 피해 보상의 규모'를 줄어보자는 속내라는 게 관련업계의 시선이다.

법조계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재판은 답이 정해진 싸움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E1이 대법원에서 패소한 이유도 공정위를 통해 담합 결과가 밝혀져 확정된 사실이 됐기 때문"이라며 "피고의 담합 사실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상 재판에서 승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러나 소송 초반에 요구하지 않았던 위임장을 현재 다시 요구하거나 감정 결과에 대해 재감정을 요구하는 것은 손해배상 금액 산정 기준이 아닌 손해배상을 해야 할 인원을 줄이기 위했다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취재에 의하면 당일 법정에서 한 관계자는 "(인당) 금액은 적은데 단체로 지불해야 해서"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편, 소송의 다음 변론기일은 3월 28일로 예정돼 있다.

저작권자 © 뉴스저널리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