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돌연 말을 바꾸면서 정치권과 산업계, 지역사회, 국민들의 날 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회의에서 “우리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2084년까지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다만 적절한 가동률을 유지하면서 원전의 안전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지시했다.

대선투표를 10여일 남긴 상황에서  지난 5년 동안 탈원전을 추진해온 것과 완전히 대조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원전업계 "어처구니 없다", 정치권 "대통령이 선거개입" 주장


이같은 문 대통령의 말바꾸기에 정치권과 지역 시민단체, 산업계, 시민 등의 비판 공세가 거센 상황이다. 

우선 원전업계와 전문가들은 '어처구니 없다'는 입장이다.

한 원전부품업체 관계자는 "5년간 탈원전을 밀어붙이며 업계를 고사위기에 빠뜨려 놓고 대선 10일을 앞두고 갑자기 친원전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다" "정부가 원전 건설과 운영 일정을 늦춰 놓고 이제 와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서 에너지 안보 중요성을 깨닫고 이제야 슬그머니 탈원전 정책을 내려놓는 모양새”라며 “탈원전 정책이 문제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원자력 발전량을 조용히 늘려온 정부가 더 이상 원전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활용하려면 신한울 3·4호 건설 재개와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원전에 대해 계속 운전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이런 언급이 없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탈원전 옹고집을 또 한 번 확인시켜준 ‘립서비스’”라고 지적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28일 "탈원전 정책 실패가 확실시 되자 슬그머니 한 발 빼는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이어진 유럽발 에너지 위기나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원전 강화’ 발언 등이 이어지자 은연 중에 압박을 받고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도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지난 5년간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고, 향후 60년간 원전이 주력이라며 입장을 바꿨다”며 “정권의 잘못된 판단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지적했다.

황규한 국민의힘 선대본부 대변인은 황규환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실패는 인정하기 싫고, 대선 국면에서 탈원전 정책이 심판대에 오를 것 같으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인가”라며 “차라리 솔직하게 국민 앞에 탈원전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위기상황에서 기댈 곳은 원전밖에 없다는 것을 털어놓으라”고 비판했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는 선거에 개입하지 마라”며 “대선 중립은 대통령의 의무다. 임기 내내 불공정과 내로남불 행태로 비판을 받았던 문 대통령께서 마지막 퇴장하는 모습까지 국민에게 지탄받고 싶지 않다면, 대선까지 남은 기간 올바른 처신을 하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으며 탈원전 등 국정을 정치이념으로 좌지우지한 이 정권을 심판하려는 민심을 교란하려는 정치적 술수"라고 주장했다. 

재계와 지역사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철수 전 창원상공회의소 회장(고려철강 회장)은 27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탈원전은) 경제의 큰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 실패”라며 “원자력발전 산업은 한번 무너지면 복원이 힘들다고 수차례 호소했지만 (문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각종 관련 뉴스의 댓글에는 많은 국민들의 비판글로 도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한국 원전산업 생태계는 무너져 ...정부의 5년간 원전 죽이기 드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선 때 탈원전 정책인 ‘원자력 제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집권 이후 신고리 원자력 발전서 5·6호기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2022년 원전을 28기까지 줄이는 등 로드맵을 그렸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3세대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전세계에 원전을 수출하던 원전 강국이었지만  탈원전 이후 두산중공업을 중심으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두산중공업은 한전으로 판매하던 부품 일감이 떨어져 심각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으며,  세계 최고 원전 설계·시공 능력을 자랑하던 부품업체들은 줄줄이 폐업했다.

2019년 국내 원전 부품 공급업체 매출은 3조9311억 원으로 탈원전이 시작되기 전인 2016년(5조5034억 원)보다 28.5% 줄었다. 기술자들도 일자리를 잃고 현장을 떠나갔다. 대학의 원전 관련 학과 학생 수도 급감했다. 

한전은 값비싼 신재생 에너지 구입비용 증가로 지난해 5조8000억원 규모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으며, 부채는 146조원까지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대선 이후 차기 정부에 전기료 인상을 떠넘겼다. 원전 수출 강국이었던 한국은 문재인 정권 동안 원전 수출이 '제로'였고, 그마저 이미 계약했던 건조차 축소됐다. 

정부의 지난 4년 동안의 ‘원전 죽이기' 실상은 최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검찰의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공소장에 정부가 친원전 전문가는 경제성 평가 자문 대상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에는 산업부 삭제 자료에서 ‘북한 원전 건설 방안’ 등이 담긴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탈원전을 하면서 북한에는 원전 건설을 검토한 것이다. 

결국 한국 원전산업의 운명은 차기 정부에 달렸다. 윤석렬 국민의힘 후보는 탈원전 정책 완전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감(減)원전'을 주장하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엔 부정적이지만 신한울 3·4호기 공사 중단에 대해서는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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