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위로가 되길 바라고, 하루 정도는 잘 주무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내가 누워있을 때' 기자간담회에서 최정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최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위로와 편안한 휴식을 얻기를 바랐다.
그는 이어 "'내가 누워있을 때'를 찍고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최근 주변 사람들을 많이 생각했다는 걸 느꼈다"며 "그래서 영화 속 인물이 대단히 극적이지 않고 옆에서 위로해주고 싶은 인물이며 영화도 드라마틱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내가 누워있을 때'는 각기 다른 상처를 품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세 여성이 짧은 여행을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로드 무비다.
작품에는 앞만 보고 달려온 회사원이지만,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선아(정지인)와 여자친구와 관계를 거치며 성정체성과 마주한 지수(오우리), 사산한 아이의 그리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보미(박보람)가 등장한다.
최 감독에 따르면 작품에 담긴 감정의 출발점은 '애도'였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 때 제일 깊이 생각한 감정은 '애도'였으며, 그로부터 시작됐다"며 "죽음의 애도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변해가고 헤어지는 애도까지 다 포함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영화 제목을 자신의 불면 경험과 연결지었다. 그는 "사소한 것에서도 생각에 꼬리를 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잠에 쉽게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영화 속 인물들도 각자의 고민과 상황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 인물뿐만 아니라 고민이 많은 주변 사람들까지 오늘 하루만큼은 잘 잤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라는 제목에서 차용해 정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 감독을 비롯해 배우 정지인과 오우리가 참석해 영화 속 인물에 담긴 이야기를 전했다.
선아 역의 정지인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직업적 성취를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열정이나 욕망으로 직장에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어떤 벽에 부딪혀 방황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심을 잃어가는 인물"이라며 "선아는 뜻하지 않는 여행에서 지수와 보미를 통해 자신의 못난 부분을 되돌아보고 중심을 되찾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30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과정에서 정지인은 성별보다는 인간으로서 마주하는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정지인은 "선아가 30대 여성이라서 겪어야 했던 어떤 부분도 분명히 있다"며 "다만 한 사람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겪는 성장통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오우리는 선아의 사촌 동생이자, 성소수자인 '지수'를 연기한다. 그는 "'지수'는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학교에서 아웃팅을 당하는 아픔을 겪지만, 결국 스스로 용감하게 이겨내는 인물"이라며 "성소수자를 연기하면서 유의했던 점은 많이 없었다. 단순히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그 감정을 어떻게 정확하게 표현할지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11일 향년 30세로 세상을 떠난 박보람 배우가 연기한 보미는 극 중 엉뚱하지만 섬세한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최 감독은 보미를 "사산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인물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죽은 딸을 보는 걸 무섭거나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그 존재를 볼 수 있는 것에 고마워하며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박보람 배우는 첫 미팅 때부터 정말 보미 같았다"며 "첫 연기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내가 누워있을 때'는 자극적인 사건보다 평범하지만 가볍지 않은 감정에 천천히 다가가는 영화다. 등장인물은 누군가의 특별한 서사보다 모두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
정지인은 "이 영화가 나와 닮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며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런 이야기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의 아름다움을 통해 개인적으로 위로받았다"며 "관객들도 어떤 방향으로든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우리는 이 작품의 메시지를 '화해'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그는 "누군가를 질책하거나 탓하는 영화가 아니라, 공감하고 이해하며 대화로 풀어가는 화해 같은 영화"라며 "관객들이 주변 사람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만드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