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뭄바이는 '꿈의 도시'다. 희망을 품고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들지만, 영화는 그 반대편을 비춘다. 빛보단 어둠이 깃든 도시, 쉼 없이 흐르는 인파 속에서 프라바(카니 쿠스루티)는 하루를 시작한다.
영화는 화려한 꿈 대신 시간을 잠식하는 도시의 얼굴로 뭄바이를 담아낸다. "23년을 살았지만 떠나야 할 것 같다", "덧없음에 익숙해져야 한다", "고향에 돌아갈 일은 없다"는 오프닝 시퀀스의 내레이션은 뭄바이가 시간을 빼앗는 '착각의 도시'로 기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지난 23일 개봉한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빛과 어둠, 음악과 소리로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낸다. 영화는 프라바와 그녀의 룸메이트 아누(디브야 프라바), 동료 간호사 파르바티(차야 카담)를 따라가며, 말로 설명되지 않는 관계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프라바는 뭄바이의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아버지가 정해준 상대와 몇 번 얼굴을 본 뒤 결혼했고, 혼인 직후 독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일상을 버틴다. 아누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사이의 경계선을 조심스럽게 넘는다. 무슬림 연인 시아즈(흐리두 하룬)와 만남은 늘 주변을 의식하며 이어진다. 파르바티는 20년 넘게 살아온 집에서 쫓겨날 처지다. 건물주는 임대 계약 관련 서류가 없다는 허점을 이용해 퇴거를 요구한다.
영화는 이들의 하루를 과장 없이 따라간다. 프라바는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집으로 돌아와 전화기를 바라보며 남편에게 연락을 망설인다. 아누는 시아즈와 약속을 잡고, 주변을 살피며 그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간다. 파르바티는 쫓겨날 위기에 처한 집 안에 홀로 앉아, 조용히 공간을 바라본다. 희미한 빛과 어둠 속에서 이들이 살아가는 뭄바이의 무게가 드러난다.
파얄 카파디아 감독은 빛을 따라 인물들의 억압과 해방을 그려낸다. 영화 중반부 세 인물이 뭄바이를 벗어나 파르바티의 고향인 해변 마을 라트나기리로 향하면서 자연광이 인물들을 부드럽게 감싼다. 억압의 도시에서 벗어나 마주한 라트나기리의 빛은 인물들과 주변 공간을 잇는다.

라트나기리에서 세 인물은 억눌렸던 감정의 껍질을 조금씩 벗는다. 프라바는 바다에 빠진 남성을 구조한 뒤 그와 나눈 대화에서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아누는 몰래 온 시아즈와 함께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억압 없는 감각을 되찾는다. 파르바티는 살 곳과 새로운 일터를 얻는다. 반면 뭄바이에서는 인공조명이 인물들을 단단히 가르고, 병원과 거리의 빛은 이들을 압박한다.
영화는 소리와 음악으로도 감정의 흐름을 구축한다. 뭄바이 시퀀스에서는 선풍기 소리, 거리의 소음, 병동의 기계음이 겹쳐며 도심의 혼란을 전한다. 라트나기리로 도착한 후에는 파도와 바람 소리가 공간을 이끌며, 탁 트인 자연과 느린 생활 리듬을 표현한다.
영화의 마지막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시퀀스에서는 콜카타 출신 싱어송라이터 탑셰(Topshe)가 만든 'Imagined Light'라는 제목의 포스트록이 흐른다. 여러 악기가 점층적으로 쌓이며, 서서히 고조되는 이 곡은 별빛 아래 펼쳐진 장면과 함께 침묵과 음악만으로 세 인물의 해방감을 극대화한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1994년 '스와힘' 이후 30년 만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지난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밖에 2025 아시안필름어워즈 작품상, 2024 고담어워즈 국제장편영화상 등 전 세계 영화제 4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일상과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간 끝에, 결국 빛처럼 인정받은 결과다.
화려한 설명이나 극적인 전개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어둠을 걷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가 서로의 빛이 되는 순간을 섬세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빛은 손에 닿지 않는 환상일지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서로를 향할 때 조용히 살아난다. 그렇게 그들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마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