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 기자간담회에서 톰 삭스의 작업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퍼포먼스 형식의 프로그램인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지난 24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 기자간담회에서 톰 삭스의 작업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퍼포먼스 형식의 프로그램인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5, 4, 3, 2, 1."

지난 24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화성으로 떠나는 우주선이 발사됐다. 물론 진짜 로켓은 아니다. 종이와 골판지로 조립된 '예술 우주선'이 이륙했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직원처럼 복장을 한 이들의 환호 속에 현장에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DDP에서 열린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 기자간담회에서 톰 삭스가 5분가량 진행한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은 실제 탐사 시뮬레이션을 연상하게 할 만큼 현장감 있게 구성됐다. 전시 개막일인 25일 오후 5시부터는 6시간 동안 '마라톤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이 진행될 예정이다.

톰 삭스는 "우리의 우주 프로그램은 진짜"라며 "우리는 즐기기 위해 있지 않고 탐사하기 위해 있다. 퍼포먼스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톰 삭스가 지난 24일 열린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톰 삭스가 지난 24일 열린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미국 현대미술가 톰 삭스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9번째 주인공으로 초청돼 '스페이스 프로그램: 무한대(Infinity)' 프로그램을 오는 9월 7일까지 DDP 뮤지엄 전시1관에서 선보인다.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지난 여정을 총망라한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작품 200여점이 공개된다.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2007년 '아폴로 달 착륙선(LEM)'을 브리콜라주 기법(손에 닿는 대로 아무것이나 이용하는 예술 기법)으로 구현하며 시작됐다. 톰 삭스는 일상의 재료들을 브리콜라주 기법으로 조합해 그만의 우주를 구축해 왔다.

톰 삭스는 "과학과 종교는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주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과학은 그걸 연구한다. 나는 내가 과학자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우주 탐사 과정에서 필요한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우주 탐사 과정에서 필요한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이번 전시는 그가 과학자로서 탐사한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우주 탐사 미션을 다룬다. 이번 여정은 화성에 착륙해 수집한 암석, 예상치 못한 외계 생명체와 마주치는 상황 등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의 순간들을 담았다.

전시는 강한 바람과 빛이 밀려오는 'RISCAR' 구역에서 시작한다. 전시장에 입장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이 구역은 빛과 공간을 다루는 미니멀리즘의 대가 로버트 어윈의 미학적 개념을 반영한 공간이다. 관객의 몸을 '정화'하며 일상에서 우주로 넘어가는 경계이자 입구 역할을 한다.

전시는 우주 탐사를 위해 먼저 필요한 발굴과 관련된 도구들이 전시된 'Excavation'으로 이어진다. 공간 한쪽 유리창 너머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 조형물 'DDP'가 놓여 있다. 톰 삭스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의 건축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톰 삭스는 "DDP는 정말 환상적이며, 자하 하디드 자체를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4만5000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이뤄진 이 건물은 우주선과 같다. 우주인들이 DDP 옥상에 착륙해 지붕을 녹이고 내부까지 내려왔고, 우리가 지금 그 우주선 안으로 들어온 셈"이라고 전했다.

이어 "전시장 곳곳에 난 창문들은 우주선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장면"이라며 "창 너머에 보이는 것은 소비주의의 세계다. 우리는 신성한 이 공간 안에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소비주의를 동떨어져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톰 삭스가 앞서 네 번의 우주 탐사에서 발굴한 암석과 화석 등 지질학 샘플을 전시한 모습. '거장들'에는 감독 박찬욱과 봉준호의 이름이 붙은 샘플도 전시돼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톰 삭스가 앞서 네 번의 우주 탐사에서 발굴한 암석과 화석 등 지질학 샘플을 전시한 모습. '거장들'에는 감독 박찬욱과 봉준호의 이름이 붙은 샘플도 전시돼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유물들이 전시된 다음 구역인 'Astrobiology'와 'Museum' 섹션은 그간의 탐사 과정을 따라 정리된 아카이브처럼 구성된 공간이다. 앞서 네 번의 우주 탐사에서 발굴한 암석과 화석 등 지질학 샘플이 배치돼 있다. 샘플 표지에는 '거장들', '새들의 노래' 같은 문구가 한국어로 적혀 있다. 작가는 한글을 전시의 일부로 활용했다.

톰 삭스는 "한글은 명료하고 단순한 구조이며 그래픽 디자인적으로도 빛나는 언어"라며 "한글을 배우는 중이고, 지질학 샘플에 한국어로 표지를 달아놓았다"고 설명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달 착륙선을 톰 삭스만의 브리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실제 크기로 재현한 작품인 'LEM'(오른쪽)이 전시돼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미 항공우주국(NASA)의 달 착륙선을 톰 삭스만의 브리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실제 크기로 재현한 작품인 'LEM'(오른쪽)이 전시돼 있다. 사진=양찬혁 기자

전시의 메인홀에는 우주 임무의 핵심이 되는 '미션 컨트롤 센터'(MCC)가 배치됐다. 전시장 한쪽을 가득 채운 모니터에는 관람객 동선과 전시 구간별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MCC는 통신과 제어를 상징하며, 톰 삭스가 구축한 우주 임무의 가상 관제 본부이자 전시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LEM'(Lunar Excursion Module)이라는 달 착륙선 작품,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대형 설치물 'Quarantine', 화성 표면을 연상시키는 'DIG SITE'도 DDP에서 함께 전시된다.

톰 삭스는 이번 여정의 이름을 '무한대'로 붙였다.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지만,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최종 목적지는 무한대이자 무한에 다다르는 것"이라며 "시간이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고 다른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무한대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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