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한 행정명령 펼쳐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서명한 행정명령 펼쳐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법 폐지와 관세 부과 방침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계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 시각)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잃어가고 있다"며 "대만이 이를 훔쳐 갔으며 일부는 한국에도 있다"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해당 발언은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도체법(CHIPS Act) 폐기 의사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초당적 지지로 통과된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및 연구개발(R&D)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제정됐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을 세우는 기업에 5년간 총 527억 달러(약 76조5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삼성전자는 바이든 행정부와 계약을 맺고 미국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47억4500만 달러(약 6조88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미국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메모리용 패키징 공장을 세우며 4억5800만 달러(약 6640억원)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법 폐지를 공식화하면서 이미 투자를 결정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보조금 지급이 불확실해졌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미국 내 사업 계획을 재검토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반도체법 폐지가 현실화되면 보조금 지원 없이 막대한 투자 비용을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다른 생산 거점 대비 인건비 부담이 높다는 점에서 향후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미국 내 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법 폐지와 별개로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에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현재 반도체는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간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고율의 관세가 적용될 경우 가격 경쟁력이 약화돼 수출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반도체 수출 흐름의 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낮아지는 반면 미국과 대만으로의 수출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대만 수출 비중은 2020년 6.4%에서 2024년 14.5%로 급상승했는데, 이는 SK하이닉스가 최대 고객사인 미국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HBM 판매액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 HBM 공급은 미국 수출이 아닌 중간 제조 기지인 대만을 통해 수출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고객사의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HBM 생산 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 부과와 반도체 지원법 폐지가 동시에 현실화된다면, 양사는 막대한 투자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반도체법 폐지가 실제로 시행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해당 법안을 폐지하려면 상원의원 100명 중 60명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관세와 반도체법 폐지라는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TSMC는 미국의 관세 정책이 발표된 이후 4년간 애리조나주에 5개 공장을 새로 건설하는 약 100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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