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바둑 열풍의 주역,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가 영화로 재탄생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이들의 바둑 명국을 담은 영화 '승부'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승부'의 제작보고회가 7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배우 이병헌,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조우진과 김형주 감독이 참석했다.
조훈현-이창호, 바둑판 위 '승부'가 스크린으로

'승부'는 대한민국 바둑계의 거장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스승과 제자이자 라이벌일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대결과 성장 과정을 담았다.
조훈현 역을 맡은 이병헌 배우는 촬영 전 준비 과정에서 조훈현 국수를 직접 만났다고 밝혔다. 그는 "조훈현 국수를 뵙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분의 승리욕과 생각 등 배울 점이 많았다"며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조훈현 국수를 관찰했고, 당시 경기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영화를 선택하고 난 뒤 조훈현·이창호 국수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등 많은 자료를 찾아봤다"며 "조훈현 국수가 바둑을 둘 때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놓거나, 다리를 떨거나 하는 특유의 자세부터 입을 동그랗게 하는 등 표정까지 계속 따라 하며 습관을 들였다"고 덧붙였다.
김형주 감독은 "당시 단순히 인기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신문 1면에 실릴 정도로 두 사람의 경기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며 "요즘의 리그 오브 레전드가 e스포츠계에서 누리는 인기만큼이나 당시 바둑은 그에 버금가는 열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창과 칼이 오가는 듯"…정적 속 숨겨진 긴장감

영화 '승부'는 바둑이라는 정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감정의 흐름과 긴장감은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형주 감독은 "바둑이라는 소재가 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촬영하면서 창과 칼이 오가며 피가 튀기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며 "바둑을 몰라도 재밌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영화다. 그렇다고 바둑을 허투루 다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영화 '승부'에 특별출연해 남기철 역을 맡은 조우진 배우는 "스포츠 영화 못지않은 웅장함과 타격감 등을 경험할 수 있다"며 "배우들의 호흡과 촬영 기법 등은 손에 땀을 쥐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병헌 배우는 "바둑을 잘 모르고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단숨에 참여하고 싶었던 만큼 영화는 드라마틱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 "그 시대를 알고, 그분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 어떤 영화보다 클 것이며, 바둑을 몰라도 관객들이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바둑돌만은 제대로 잡아달라"…손가락 관절까지 연기

배우들은 영화 속 바둑 대국 장면을 위해 "손가락 관절까지 연기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바둑 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훈현 국수의 첫 번째 부탁도 다름 아닌 "바둑돌만은 제대로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병헌 배우는 프로 바둑기사에게 일대일 교습을 받으며 세심한 연기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바둑을 두는 방법뿐만 아니라 고수들이 첫수를 놓을 때 상대방이 '내가 졌다'라고 느낄 수 있는 기세까지 생각했다"며 "특히 바둑판이 꽉 찼을 때 정확한 위치에 거침없이 돌을 놓는 상황이 정말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바둑 기자이자 바둑 기사인 천승필 역을 맡은 고창석 배우도 "얼굴 장면을 촬영할 때보다 손가락 장면을 촬영할 때 더 떨렸다"며 "액션 영화는 어설픔이 있어도 메꿀 수 있지만, 바둑알을 놓는 것은 피할 데가 없어 더 긴장됐다"고 고백했다.
조훈현의 동반자 미화 역을 맡은 문정희 배우는 "미화는 조훈현 국수의 아내로서 스승과 제자를 함께 품고 살아야 하는 인물"이라며 "제자를 집에 들였을 때 달라지는 집의 분위기와 남편의 상태 등을 바둑돌의 소리, 가르치는 소리만으로 상황을 읽어야 했기에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넷플릭스에서 극장으로…"영화는 극장이 제격"

영화 '승부'는 처음에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논의 끝에 영화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김형주 감독은 "애초에 극장 개봉을 목표로 촬영과 후반 작업까지 마쳤다"며 "영화를 더 영화답게 만들어주는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병헌 배우는 "얼마 전 션 베이커 감독이 오스카에서 극장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듯, 나도 못지않게 극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것이 최종적 목표라고 생각했으며,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게 돼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창석 배우도 "술이나, 와인, 막걸리 등 각자에게 맞는 잔에 마셔야 술이 가지고 있는 맛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영화가 가진 감성과 매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승부'가 주는 의미…'패배를 받아들이는 법'

김형주 감독은 영화 '승부'의 의미를 "잘 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승부는 늘 이길 수만은 없는 것이기에 질 때를 대비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나를 위해 기약하고, 그다음 승부를 위한 포석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모두 어떻게 보면 일상이라는 바둑판 앞에 매일 앉는다"며 "승부의 결과가 어떻든 후회 없이 자신만의 바둑을 두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병헌 배우는 "배우로서 작품을 만날 때마다 캐릭터를 내 것으로 온전히 만드는 것이 승부"라며 "영화에서는 패배를 어떻게 대처하고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패배와 승리가 중요하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과 태도를 배우게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