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종합 예술로 불린다. 각본, 연기, 음악, 미술, 영상 등 다양한 요소가 하나의 작품으로 결합하기 때문이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 종합 예술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더했다.
지난 2023년 AI가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로 전미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의 대규모 파업이 있던 배경 속에서 '브루탈리스트'의 AI 기술 활용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속 AI 기술은 주연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펠리시티 존스의 헝가리어 발음을 자연스럽게 다듬거나, 건축 이미지를 만드는 등 영화의 일부 장면에서 활용됐다. 다만 영화 속 AI 기술은 예술적 진정성을 해치기보다는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미적 세계를 더 정교하게 구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시작부터 관객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헝가리계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아내 '에르제벳 토스'(펠리시티 존스)가 쓴 편지를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편지가 낭독되는 동안 라즐로 토스는 어둡고 답답한 배 안에서 빠져나와 거꾸로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을 마주한다. 그가 배 안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불협화음의 현악기 소리와 함께 연출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또 에르제벳 토스의 편지에서는 "자기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보다 더 절망적으로 노예가 된 사람은 없다"며 괴테의 문장이 언급된다. 거꾸로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과 괴테의 문장은 라즐로 토스의 불안한 미국 생활을 조명하며, 영화가 그려낼 자본주의적 예술 세계의 딜레마를 암시한다.

라즐로 토스는 무사히 도착한 미국에서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가 디자인한 '해리슨 리 밴 뷰런'(가이 피어스)의 서재가 잡지에 실리면서 밴 뷰런의 관심을 끌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는 밴 뷰런으로부터 문화센터 건축을 의뢰받는다.
그러나 라즐로 토스의 문화센터 건축 작업은 자본의 논리 안에서 움직인다. 일례로 원래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된 이 센터에는 시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예배당을 포함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 장면은 자본과 종교, 그리고 예술의 역학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영화에는 '높이'와 관련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는 상승과 성취를 원하는 라즐로 토스의 삶을 의미하면서 그가 겪는 고통도 함께 나타낸다. 또 예산을 문제 삼아 문화센터의 높이를 낮추려는 시도가 있을 때, 라즐로 토스는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높이를 유지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장면들은 예술적 신념을 지키려는 한 건축가가 현실의 벽과 부딪히며 타협해야 하는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밖에 영화 속 조명과 구도 등은 브루탈리즘 건축의 특성을 반영한다. 영화에서 빛과 어둠이 선명하게 대비되고, 공간은 단단하면서 차갑다. 밴 뷰런의 서재 공사를 위해 저택을 방문하는 장면에서는 성처럼 거대한 건물이 불협화음의 현악기와 함께 묘사되며 억압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건축을 배경으로 삼으며, 건축의 특성을 영화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 영화는 콘크리트만큼이나 강렬하고 무거우면서 예술가의 고뇌를 담아낸다. 3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라즐로 토스의 삶을 조명하며 자본과 예술, 타협과 신념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탐구한다. 거친 콘크리트 위에 새겨진 라즐로 토스의 신념과 갈등을 담아 관객들에게 예술과 권력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또 비스타비전과 70mm 필름 카메라 촬영, 최근 영화들에서 보기 드문 '인터미션'까지 넣으며, 영화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한층 강화했다. AI 기술 활용부터 브루탈리즘 건축의 시각적 표현까지,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