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책. 사진=교보문고 자료 갈무리
필사책. 사진=교보문고 자료 갈무리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를 멋지게 여기는 '텍스트힙'은 독서 문화에 새로운 흐름을 더했다. 예전부터 이어져 온 '필사'는 개인이 선택한 텍스트로 '취향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며, 한때 숙제였던 '베껴 쓰기'에 새로운 의미를 담은 필사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20일 교보문고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대비 2024년에 필사책 출간 종수는 57권에서 81권으로 42.1% 늘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필사 태그가 지난해 9월 기준 약 65만에서 올해 1월 기준 약 68만개로 증가했다. 지난해 진행된 '제10회 교보손글씨대회'에는 전년 대비 약 3배에 달하는 4만4993명이 참여해 역대 최다 참가자를 기록했다.

필사 도서는 감성적 문구가 특징인 시, 문학, 에세이부터 철학,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로 출간되며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12.3 비상계엄의 영향으로 '헌법 필사'와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필사책' 등 법 관련 도서가 필사책으로 출간됐으며, 이달에는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 필사 특별판', '마음의 소란을 다스리는 철학의 문장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저녁 한 문장 필사' 등 여러 분야에서 필사책이 출간됐다.

필사 커뮤니티 인팩트의 이미현 대표는 "처음에는 감성적인 에세이나 명언 위주였지만,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과 니즈에 맞춰 필사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며 "MZ세대에게 글을 골라 필사하는 일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2020~2024 Z세대 필사 도서 판매추이 비교 그래프. 사진=교보문고 자료 갈무리
2020~2024 Z세대 필사 도서 판매추이 비교 그래프. 사진=교보문고 자료 갈무리

최근 출간된 필사 도서의 구매 비율 조사 결과 20~30대가 높은 구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헌법 필사'는 20~30대가 전체 구매 비율의 53.8%를 차지했으며, 지난 20일 발간된 'DAY6 가사 필사집'은 구매 연령대에서 20대는 38.1%를, 30대는 33.9%를 기록했다. 교보문고 자료에 따르면 Z세대의 필사책 구매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2024년에는 전년 대비 판매량이 692.8% 올랐다.

'필사 열풍'에는 문해력 저하 현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사흘', '금일', '심심한 사과' 등 표현을 잘못 이해하는 사례가 늘면서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필사도 함께 주목받게 된 것이다.

예스24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문해력과 어휘력 관련 도서 구매 연령비에서 20대는 0.9%를, 30대는 3.6%를 차지했으나 2024년에는 20대가 4.6%, 30대 20.1%로 증가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문해력', '어휘력'을 키워드로 하는 책의 출간은 2020년 36종에서 2023년 162종까지 늘어났다.

이 대표는 "참여자들의 신청 이유를 보면 짧은 콘텐츠만 접하다 보니 긴 글을 읽고 쓸 때 어려움을 느껴 필사를 시작한다는 내용이 많다"며 "이는 문해력 저하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필사는 손으로 글을 쓰며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기에 '손으로 쓰는 명상'으로도 불린다. 이 대표는 "필사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활동이라 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며 "어떤 참여자들은 몰입의 즐거움을 알아 카페에서 필사할 책과 노트를 꺼내 이 몰입의 순간을 즐긴다"고 덧붙였다.

필사하기 좋은 도서를 큐레이션 한 이벤트 페이지. 사진=알라딘 홈페이지 갈무리
필사하기 좋은 도서를 큐레이션 한 이벤트 페이지. 사진=알라딘 홈페이지 갈무리

출판사와 서점들은 '필사 열풍' 속 독자 참여 이벤트를 이어가며 필사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비 출판사는 지난달 필사클럽을 모집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소년이 온다', '글 쓰는 딸들' 등의 도서를 필사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또 '헤매는 중이지만 해내는 중입니다', '허송세월', 'DAY6 가사 필사집' 등의 도서들은 도서 구매 시 필사를 위한 노트 증정 등의 이벤트를 마련했다.

'2025 #사락독서챌린지' 이미지. 사진=예스24
'2025 #사락독서챌린지' 이미지. 사진=예스24

예스24는 지난해 '공정하다는 착각', '사피엔스', '도둑맞은 집중력' 등 예스24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필사를 진행하는 이벤트를 열었으며, 지난 13일에는 2025년을 맞아 독서 커뮤니티 '사락'에 책 1권을 선정해 필사한 문장을 올리는 이벤트를 이어가고 있다.

교보문고sam은 지난해 9월 한컴타자와 협업해 필사 후 응모하면 추첨해 경품을 증정하는 필사 이벤트를 선보였으며, 알라딘은 '옮겨 적고 열고 닫는 새해 새마음 필사'와 '내 말과 글을 살리기 위한 필사'를 주제로 필사하기 좋은 도서를 큐레이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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