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우수 밸류업 기업으로 뽑힌 기업들이 주주들의 이익과는 상반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특정 기업의 주가 하락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사후조치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기업들의 '밸류다운'을 방치한 채 동남아시아를 방문해 국내 밸류업 프로그램 홍보에 나서면서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전일대비 약 23%가 빠진 4만55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전 영업일인 8일 오후 4시55분 신규 시설 투자 관련 내용 공시를 올렸으나 시간외 단일가 매매가 종료된 오후 6시44분 55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말 거래소가 코리아밸류업지수를 발표한 후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 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이사회 결의가 나온 셈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침체된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일부 국내 기업들은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사회의 '찬성'표에 따라 주가 변동성은 극대화되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후 두산그룹은 두산밥캣 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지분가치를 급격하게 희석시키는 결정을 해 반발을 샀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자금을 금융사들에게 조달받은 뒤, 곧바로 유상증자를 결정해 "오너가 돈 빌려서 경영권을 지키고, 갚는 건 주주들에게 시킨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두산밥캣과 고려아연, 이수페타시스는 모두 우수 밸류업 기업 100개 안에 포함돼있다. 금융당국이 코리아밸류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수 기업들로 꼽힌 기업들 조차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금융당국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책임론도 부각되고 있다.

금감원은 두산밥캣과 고려아연 이사회 결정에 제동을 걸었으나 모두 주가 변동성이 극대화된 이후 사후조치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페타시스의 주가 하락도 사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그저 방치했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보통 기업들은 공시 전 금융당국에 공시 내용을 보고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유상증자 공시가 나오기 전부터 당국이 월요일(11일) 정규 장이 열리기 전 이수페타시스에 거래정지를 걸었다면 신규 투자 공시를 보고 시간 외로 주식을 산 주주들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이수페타시스의 주가 하락을 사전에 예상하고도 방치한 셈"이라며 "주주들의 신뢰는 물론 밸류업에 대한 신뢰도 잃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을 향한 불신은 이복현 금감원장의 동남아시아 출장일정이 발표되면서 더욱 커졌다. 이 원장은 지난 11일을 시작으로 오는 15일까지 베트남, 홍콩, 인도네시아 3개국을 방문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의 노력과 지향점 등을 제시하고 기업 밸류업 진행 현황 등을 홍보하는 일정이다.

다른 관계자는 "정성적 평가 없이 뽑은 밸류업 기업들이 주주들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와중에 해외 IR을 한다고 해서 이 원장의 정책 발언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라며 "임기 내내 메시지만 강하게 던지고 액션은 없으니 무늬만 밸류업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저널리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