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중 창살 너머를 바라보는 몰리나. 사진 = 이하영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중 창살 너머를 바라보는 몰리나. 사진 = 이하영 기자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사랑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한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서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두 인물의 공감을 통해 개인을 벗어나 '우리'로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2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예그린씨어터에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이 실시됐다. 이날 프레스콜에는 전박찬, 이율, 정일우, 박정복, 최석진, 차선우 등 출연진과 박제영 연출이 참석했으며 △장면 시연 △질의응답 △포토타임 순으로 진행됐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 마누엘 푸익이 1976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빌라 데보토 감옥 안 작은 방에 수감된 반정부주의자 정치범 '발렌틴'과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몰리나'가 등장한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이상을 꿈꾸는 차가운 발렌틴과, 정치, 사상, 이념에는 관심 없는 소극적이고 현실도피적인 몰리나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몰리나가 해주는 '표범 여인'이 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접점으로 점차 서로에게 빠져든다.

지난 2011년 초연 이후 2015년, 2017년 재·삼연을 거쳐 사연으로 돌아온 거미여인의 키스는 회전문 관객(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관객)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사연은 박제영 연출가가 번역·각색·연출을 담당했으며 몰리나 역에 전박찬, 이율, 정일우가 캐스팅 됐다. 발렌틴 역은 박정복, 최석진, 차선우가 분한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장면 시연 중 일부. 왼쪽 인물은 발렌틴, 오른쪽 인물은 몰리나다. 사진 = 이하영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장면 시연 중 일부. 왼쪽 인물은 발렌틴, 오른쪽 인물은 몰리나다. 사진 = 이하영 기자

 

이 연극은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가 맞지만 현대 사회, 2024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와 차별, 우리 역사에서 있었던 어떤 운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박찬 배우가 프레스콜 자리에서 발언한 것과 같이, 거미여인의 키스는 두 사람의 사랑을 기반으로 이해와 공감, 더 나아가 인류애라는 개념으로 시야를 넓힌다. 두 사람의 근본적인 갈등은 성별 이분법적인 젠더 관념과 1970년대 아르헨티나를 지배했던 독재 정권과 그로 인한 억압으로부터 비롯된다.

발렌틴과 몰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핍박받고 빌라 데보토에 갇혔다. 사회적으로 두 사람은 똑같이 탄압당하는 죄수지만 동시에 발렌틴과 몰리나는 때로 서로에 대한 편견, 불만을 드러내거나 사회·환경적 다수의 입장에 서기도 하는 복합적인 위치에 선다.

박제영 연출은 이에 대해 "1970년대에 나온 이 작품이 2024년에도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발렌틴과 몰리나처럼 우리도 언제든 사회적으로 억압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수의 의견과 생각, 편견에 의해 소수자의 입장에 처하거나, 억눌리고 개인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 우리 일상 속에서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박 연출은 "우리 삶 속에서도 어쩌면 살면서 감옥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며 "발렌틴과 몰리나가 서로 위로받고, 자신을 폄하하지 않고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 서로를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하려 하는 모습을 통해 마누엘 푸익은 시대적 억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를 단지 서사의 수단으로 삼지도 않는다. 몰리나는 그저 '자신이 여자일 뿐'이며 그것이 그녀를 그녀로 정체화하는 이유가 됨을 표현한다. 몰리나는 환경과 편견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내가 어릴 때 과도한 보호를 받아서 이렇게(성소수자로 정체화하게) 됐다고 말한다'며 정면으로 반박한다.

연출과 배우진 역시 "몰리나의 행동이나 표현을 과도히 '여성스럽게'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 연출은 "다리를 벌리고 앉아도, 털털하게 행동해도 몰리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냥 여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박찬 배우도 연기 중 중점적으로 다룬 부분에 대해 "성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인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지닌 몰리나라는 인물이 쉽지는 않았다"면서도 "객석에 언제나 당사자(성소수자)가 앉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접근했다"고 발언했다.

이번 작품으로 첫 연극 도전을 시도한 차선우 배우와,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한 정일우 배우의 소감도 눈길을 끌었다. 정일우 배우는 "처음 대본을 읽을 때는 발렌틴이 더 매력적이라 느꼈지만 오랜만에 연극으로 복귀한다고 생각하니 몰리나가 더 욕심났다"라고 말했다. 이어 "(몰리나를 연기하는 건) 내게도 도전이었고 정말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차선우 배우는 "어떤 일이던 편한 건 없고 다들 (준비하며)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농담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개인적으로 연극 무대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톤이나 발성, 몸동작, 연기의 농도 등을 몰라 초반 연습 과정에서 많이 헤맸다"며 "압박처럼 다가오기도 했지만 좋은 배우들과 연출을 만나 무대에서 열심히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맡은 배역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랐다. 전박찬 배우는 "발렌틴이 몰리나에게 '아무도 너를 함부로 다루게 하지 마, 너 자신을 폄하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말하는 장면이 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발렌틴이 몰리나에게 해줬다"라고 말했다.

이율 배우는 "괜찮아, 라고 해주며 토닥이고 싶다"고 말했고, 정일우 배우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너무 자신을 가두지 말고 더 당당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박정복 배우는 "나라면 너처럼 이런 선택을 하지 못했을 거야", 최석진 배우는 극 중 몰리나의 대사인 "넌 이미 훌륭한 선교자야"를, 차선우 배우는 "몰리나에게는 '고마워', 발렌틴에게는 '잘했어'라고 해주고 싶다"고 각각 꼽았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지난 1월 21일 개막해 오는 3월 31일까지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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