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은 지역과 식당, 노점상 등 영세업종과 택시 연료로 쓰이는 액화석유가스(LPG). 그래서 LPG는 서민 연료라고 불립니다.
14년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LPG 공급업체에 대해 가격담합 혐의로 역대 최대 규모인 6700억원이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담합을 주도한 곳은 LPG 수입사 SK가스와 E1, 정유사 4곳. 이들 기업 담합행위로 피해를 본 소비자는 대부분 택시기사, 장애인 차량, 영세상인 등 서민입니다.
공정위가 이들 기업에 과징금은 부과했지만, 서민들이 입은 피해 구제방안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피해 구제 수단이 없다는 이유인데 SK가스, E1 등 담합 회사들의 부당이득 규모 산출이 어렵고 따라서 피해액 산정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LPG 담합 피해 소비 서민들은 직접 담합회사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에 나서야 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만 4건 이상이 13년째 1심 진행 중이지만 역시 문제는 손해액 산정이 재판 진행에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소송에 최근 법원은 E1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낸 중간소비자 업체들에게 E1이 2억7472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간 난제였던 손해액이 특정된 것인데 이번 판결로 다른 재판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더욱이 LPG 업체 담합행위로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피해 소비자들도 피해 회복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담합 LPG 업체 중 몇몇 기업은 치밀했습니다. 소송을 당한 LPG 업체 중 SK가스와 E1 두 곳은 법원에 '열람 제한 신청'을 해 법원으로부터 '인용'을 진작에 받아 놓았습니다. 다른 제3자가 판결문을 볼 수 없게 사전에 차단한 것입니다. 소송에 지게 될 경우 적어도 다른 피해 소비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소송이 길어진 이유가 손해액 산정 문제였는데 판결문 열람을 막아놓으면 다른 피해 소비자들이 쉽게 소송을 제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손해배상 소송은 손해액 산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판결문 열람 제한 신청은 '제한 사유'가 있다면 누구든 신청할 수 있는 소송법상 절차입니다. 하지만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열을 올리고 있는 두 회사가 연일 '소비자'를 목 놓아 외치고 좋은 기업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이면에는 담합행위에 책임은 커녕 소비자 피해를 외면하는 이중적 태도는 '소비자는 봉'으로 생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쨌든 SK가스와 E1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이 다음 달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립니다. 법원이 LPG 담합 손해배상 사건의 첫 배상 판결을 한 이상 이 소송도 앞선 판결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재판을 통해 피해 소비자에게 배상을 하는 모습보다는 기업 스스로가 담합행위에 책무를 가지고 진정성을 담은 소비자피해 보상에 나서는 진정한 'ESG 경영'의 모습을 바라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