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산업이 2019년 출원한 용기 디자인(왼쪽)과 유니레버가 2021년 10월 출시한 제품 디자인
존산업이 2019년 출원한 용기 디자인(왼쪽)과 유니레버가 2021년 10월 출시한 제품 디자인

쿠팡의 PB상품(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제품생산을 위탁하면 제품이 생산된 뒤에 유통업체 브랜드로 내놓는 것) 때문에 피해를 받았다는 영세 중소기업 제품이 사실은 82조원의 연매출을 거둔 글로벌 다국적 기업 제품으로 확인됐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6곳은 지난 15일 기자회견과 여러 입장문에서 “쿠팡이 계열사 특혜를 업고 기존 상품과 유사한 PB상품을 출시하면서 상품 도용으로 인한 판매자 피해가 발생해 열심히 일하는 중소업체를 울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참여연대의 발표 이후 일부 매체에서는 피해 사례 중 하나로 탐사 섬유유연제 제품을 보도했다. 참여연대에서 정보를 제공했다는 가능성이 높게 제기된다. 쿠팡이 PB 상품으로 탐사 섬유유연제 제품을 내놓으면서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상 이 제품은 중소기업이 아닌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Unilever)사 제품이며, 지난해부터 쿠팡 탐사 섬유유연제 제품과 유사한 디자인을 자사 제품에 적용해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니레버는 지난해 613억 유로(약 82조원)의 매출을 거둔 직원 15만명의 다국적 기업으로 400여개 브랜드를 보유 중이다.

유니레버코리아(유니레버그룹 국내 계열사)는 쿠팡 섬유유연제의 세제 용기와 비슷한 디자인을 차용해 지난해 10월부터 ‘스너글 섬유유연제’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품의 용기는 쿠팡에 섬유유연제 용기를 납품해온 다존산업이 디자인권을 보유한 디자인이었다.

다존산업은 지난 2019년 9월 용기 특허를 출원했고, 탐사 섬유유연제는 그해 11월 출시됐다. 문제는 다존산업이 디자인 특허를 2020년 4월 정식 등록한 1년 반 만에 유니레버코리아가 업체에게 제조를 위탁해 탐사 섬유유연제 용기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유니레버는 그 전까지 스너글 제품을 직수입하며 다른 용기 디자인을 사용해왔다. 5L 이상의 섬유유연제를 담을 수 있는 다존산업의 용기는 뚜껑이 두개 달려 있으며 소비자들이 퐁퐁처럼 펌핑해서 사용하도록 디자인되어 인기가 높다.

다존산업 관계자는 “우리가 2년 전 이미 정식 등록심사를 거쳐 판매하던 용기 디자인을 지난해부터 유니레버가 유사하게 적용해 판매하고 있다“며 “자본력이 많은 다국적 기업이 디자인을 탈취한 것도 억울한데, 참여연대가 오히려 다국적 기업편을 들며 영세업체를 죽이려고 나선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다존산업은 직원 수 10명 남짓의 연 매출 33억원의 중소기업이다. 쿠팡의 PB상품을 제조하는 협력사 10곳 중 9곳이 중소기업으로 이 업체처럼 다양한 특허권을 이미 보유한 중소기업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영세한 중소기업’으로 둔갑한 논란에 대해 유통업계에서는 참여연대 발표 뒤에 불필요한 잡음이 업계에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카피 단순 의혹을 제기한 참여연대 발표 이후 애꿎은 영세한 중소기업에게 피해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섬유유연제 제품의 경우, 참여연대 발표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매체에 영세 중소기업이 생산한 제품으로 소개됐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참여연대가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쿠팡 PB 상품을 공격할 제보거리를 받아왔으며 이를 검증 없이 여러 매체에 소개한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논란이 된 쿠팡 PB상품들과 경쟁 관계에 있는 제품들도 별도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지 않았거나, 이미 품목 디자인이 이미 정형화되어 ‘카피 논란’과 무관하다는 분석이다. 최근 일부 매체 보도로 알려진 타사 제품 디자인 이미지 카피 의혹을 받은 ‘곰곰’ 소시지 페이스츄리’, 탐사 ‘고양이 모래’, 탐사 독서대도 그렇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 카피 의혹과 관련해 거론되고 있는 대부분의 상품은 제품의 특성상 디자인이 이미 정형화되어 있다”며 “다른 온라인과 대형마트 등에서도 비슷한 상품이 수십여개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도 “대부분 제품들은 오래 전부터 존재한 품목이거나, 타 업체들도 디자인권 등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색상과 디자인, 내용이 전혀 달라 모방행위가 아님에도 단지 같은 품목이라는 이유만으로 상품을 도용하고 있다는 ‘마녀사냥’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 관계자는 "PB제품 제조사인 CPLB와 함께 지식재산권을 존중해 PB제품을 출시하며 지식재산권과 침해 여부를 확인하는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다”며 “자사의 PB상품은 중소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가며 이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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