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김남호 DB그룹 회장의 '침묵의 리더십'이 조명을 받고 있다. 두명 모두 나이가 비슷하고, 오너리스크와 구조조정 등 험난한 일을 겪었지만 현재 그룹을 물려받으며 묵묵히 그룹의 재건과 안정적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좌)과 김남호 DB그룹 회장(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좌)과 김남호 DB그룹 회장(우).

조원태 회장 신의 한 수 '화물 집중'...코로나 속 올해 영업이익 900% 이상 급증 전망


한진그룹의 최대 주요 회사인 대한항공은 조원태 회장(45세)의 영리한 경영에 힘입어 올해 호조의 성적이 예상된다. 

증권가 컨센서스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올해 매출은 8조7350억원, 영업이익은 1조1431억원이 예상된다. 전년보다 매출은 14.8%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949.7% 급증하는 것이다.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1.4%에서 올해 13.1%로 11.7%포인트 상승할 전망이다. 

이같은 실적은 코로나19로 인한 여파가 지속된 가운데 얻어낸 값진 성과다. 대한항공은 3분기 화물 매출이 1조6503억원으로 역대 분기 최대를 기록하는 등 올해 내내 화물사업이 실적을 견인했다. 

기존 화물사업 최대 매출은 올해 2분기 1조5108억원이다. 글로벌 공급망 정체에 따른 항공화물 수요 증가, 여객기 운항 감소에 따른 여객기 벨리(Belly, 하부 화물칸) 공급 부족 등이 운임 상승으로 이어졌다. 매출액에서 화물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71%로 대폭 높아졌다. 

화물운송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주문한 것은 조원태 회장이다. 조 회장은 2020년 3월부터 코로나19에 따른 노선 운휴로 공항에 발이 묶여있는 여객기에 화물을 실어 운항하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대한항공은 2020년 5월부터 여객기 객실의 천장 수화물칸을 활용해 항공화물을 운반했고 2020년 6월부터는 기내 좌석공간에도 화물을 실어 옮기는 전략을 펼쳤다. 

대한항공은 화물전용 여객기 활용 극대화를 통한 기재 가동률 제고 등 공급 확대를 추진 중이다. 또 대체공항 확보와 추가 조업사 선정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화물사업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조원태 회장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리더십을 선보였다. 초기에 중국 우한 지역 교민들을 한국으로 수송하는 전세기에 함께 몸을 실었다. 당시 미지의 전염병이었던 코로나19의 위협에도 불구, 불안해하는 승무원들을 다독이며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설파했다. 

과감한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도 조 회장의 작품이다. 전 세계 항공사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황 악화로 잔뜩 움츠린 가운데, 대한항공은 오히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항공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대한항공은 현 상황에서 여객 수요가 회복된다면 더 큰 폭의 실적개선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올해 대폭 실적 개선이 기대되면서 뒤숭숭했던 회사 분위기도 달라졌다.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코로나19 여파로 여객 사업 개선이 늦어지고는 있지만 화물 사업만으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직원들의 불안감이 다소 낮아지고 사기도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말했다. 

물론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으로 인한 고용 불안감과 코로나19 사태로 반복된 강제 휴직에 직원들이 많이 지쳐있지만 희망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 시그널로 해석된다. 


김남호 DB그룹 회장, 그룹 대기업 지위 회복하고 전자산업 키워


김남호 DB그룹 회장(46세)은 지난해 7월 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그룹 전체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김 회장은 금융계열사의 안정적인 수익을 발판삼아 최초로 그룹 영업이익 1조 시대를 여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는다.

DB그룹은 김남호 호가 출범한지 1년 만에 대기업 지위를 회복했다. DB그룹은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5년 준대기업으로 밀려난 지 6년 만이다. 2020년 기준 DB그룹은 매출 23조원, 영업이익 1조86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013년 24조원을 찍은 이후 최대치이고, 영업이익은 처음으로 1조원 시대를 연 것이다. 금융자산을 포함한 총자산은 71조 원으로 재계 12위, 매출은 23조 원으로 재계 14위에 올랐다.

금융계열 의존도가 80%였던 포트폴리오는 IT와 제조업을 키우며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특히 금융 계열사들이 뒷받침 해준 가운데 반도체 위탁 생산업체인 DB하이텍이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DB하이텍은 올해 3분기 매출액 3284억원, 영업이익 1190억원을 거두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6%·77% 성장한 수치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누적 적자만 3조원에 달하던 DB그룹의 ‘미운 오리’서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백조’로 거듭났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DB하이텍이 매출은 사상최초로 1조원을 돌파하고, 영업익은 3600억원을 기록하며 3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다른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도 탄탄하다. DB손해보험은 지난해 20조원 대 매출과 7300억원대 영업이익을 올렸고, DB금융투자도 작년 매작년 매출 1조5903억 원과 영업익 1366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60%, 56%씩 증가했다. 두 회사의 실적은 올해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김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DB아이앤씨도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계열사들의 호실적 속에 지주사인 DB도 희색이 완연하다. 계열사들의 실적 호조 속에 브랜드 로열티가 늘어나면서 DB 실적도 나날이 성장 중이다. 

김남호 회장의 등장은 그룹의 외연뿐만 아니라 사내 분위기도 한층 밝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김 회장은 2009년 1월 동부제철 차장으로 입사한 뒤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에서 생산·영업·공정관리·인사 등 각 분야의 실무경험을 두루 쌓았다. 회장 취임 직전에는 DB금융연구소 부사장을 맡는 등 다양한 계열사 임직원들의 목소리를 조용히 경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김 회장은 허례허식을 거두고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의사결정을 지향하고 있다. 일례로 그는 대면보고뿐 아니라 수시로 메신저 등을 활용한 비대면 보고도 꺼리지 않는다. 과거 김 전 회장 시절에는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실행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조성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김남호 회장이 선대와는 다른 차분하고 조용한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탄탄한 DB그룹을 다시 재건 중"이라며 "김 회장이 부임 이후 1년 반동안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반도체 등 차세대 먹거리를 키우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40대 중반, 가족 리스크와 구조조정, 조용하지만 탄탄한 경영추구 등 닮은 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김남호 DB그룹 회장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조원태 회장은 1976년 1월생이고 김남호 회장은 1975년 8월 생이다. 올해 각각 45, 46세로 나이가 비슷하다.  최근 네이버를 비롯해 40대 젊은 CEO가 많아지는 추세 속에서 두 명도 40대 중반을 맞아 경영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버지 등 가족 리스크와 구조조정 등으로 곤혹을  겪은 점도 비슷하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오너3세 경영인으로 부친 조양호 전 회장의 별세 이후 그룹 회장에 올랐다. 조양호 전 회장은 2019년 3월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면서 기존 갖고 있던 폐질환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조 전회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등이 연달아 '갑질' 사고를 일으키면서 한진그룹은 위기를 자초했다. 

김남호 DB그룹 회장도 아버지 리스크에 시달렸다. 김준기 전 회장은 1969년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인수하며 그룹을 창업했다. 이후 1970년대 초 중동 건설시장에 진출해 큰 이익을 남기면서 물류·금융·전자·제철·농업 등 다양한 투자로 계열사를 늘려 2000년 재계 10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 구조조정을 겪으며 동부제철 등 주요 계열사들이 떨어져 나갔다. 

김준기 전 회장이 2017년 9월 여비서 성추행 논란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후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가 추가돼 작년 10월 구속 기소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그룹이 이미지 타격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조원태와 김남호 회장이 더욱 단단해졌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조원태 회장은 2019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진그룹 회장직에 올라 3세경영을 시작하며 그룹 재건에 힘써왔다. 그 과정에서 1년 전엔 한진칼 경영권을 놓고 조원태 한진 회장과 KCGI가 건곤일척의 한 판 승부를 벌이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가세하며 조 회장의 승리로 끝난 이후 그룹 총수로써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는 등 그룹 재건을 넘어 더 큰 목표를 향해 회사를 키워가고 있다. 

김남호 회장은 2세대 경영자로써 김준기 전 회장의 오랜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후 그룹 재건에 사실상 성공하면서 '은막의 강자'라는 별명까지 붙고 있다. 취임 초기 약속한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미래를 위한 성장발판을 만들 것, 경청하고 소통하는 경영자가 될 것, 회사와 임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 것,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한 것 등 4가지 다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다. 

두 회장이 젊은 나이에 호승지심이 있을 법도 한데  겸손하고 차분하게 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두 회장은 공식석상에 나서는 것을 자제하고 있지만 직원들과의 사내 소통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결속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김남호 회장은 망가졌던 그룹을 조용히 탄탄하게 재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재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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