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원자력추진잠수함을 각기 건조하는 '병행·공동 건조' 모델이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형 원자력추진잠수함(K-원잠)을 건조하고,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에서는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제작하는 방안이다. 이 방식은 건조 리스크를 줄이고 한국 조선업의 글로벌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전략으로도 주목받는다.

지난달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 문제가 주목받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리조선소를 잠수함 건조지로 직접 언급하면서 논의에 불을 지폈다. 이에 따라 한화가 인수한 필리조선소의 잠수함 건조 가능성과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MASGA, 이하 마스가) 펀드 활용 방안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의 독자 건조가 최선이라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과 마스가 펀드를 고려할 때 미국과 한국이 병행·공동으로 건조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은 30년 이상 잠수함 건조 경험과 축적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자체 건조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

마스가는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로 한국 정부가 1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중 일부를 해당 프로젝트에 배정했다. 필리조선소가 이 자금을 통해 군용 특수선 생산을 위한 12만평 규모의 블록 생산기지를 신설한다면,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물리적 기반도 확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필리조선소의 잠수함 건조 인프라와 인력 확보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잠수함을 건조 중인 제너럴다이내믹스 일렉트릭보트와 헌팅턴잉걸스 뉴포트뉴스 두 조선소는 생산 능력이 포화 상태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필리조선소를 대체 생산 기지로 지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력 측면에서는 인근 지역에서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숙련공을 충분히 채용하고 교육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한화는 한화오션의 숙련 인력을 필리조선소에 파견하고,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을 이식해 현지 인력을 단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핵심 기술 중 하나인 핵 연료봉 취급 문제와 관련해서도, 필리조선소 인근에는 미 해군 연구 및 행정 시설이 위치해 있고, 미국은 원자력 안전 관리에 있어 높은 수준의 감독 체계를 운영하고 있어 리스크는 크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필리조선소가 미국 해군 잠수함 건조 사업에 참여할 경우 방산업체 지정을 빠르게 획득하고, 미국 정부 수주를 통한 조선 사업 확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한국형 원자력추진잠수함을 중심으로 기술 자립과 산업 생태계 강화에 나설 수 있다.

특히 병행 건조 모델이 추진될 경우 국내 조선소와 협력사들이 글로벌 원자력추진잠수함 공급망에 편입돼 협력사의 동반 진출 기회도 확보될 수 있다. 실제로 한화오션은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 사업에 부산·경남 지역 16개 협력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필리조선소에서의 버지니아급 잠수함 건조 경험은 향후 K-원잠 완성도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기술 및 설계 노하우에 한국의 모듈·블록 제작 기술이 결합되면 원자력추진잠수함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줄이고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산업 협력 의지를 고려할 때, 국내 원잠 건조와 미국 버지니아급 건조를 병행하는 방식은 방위산업 기술자립과 글로벌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충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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