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히 몇몇 의미 있는 태극기를 보여주기보다 '이 나라의 현대사가 이런 흐름으로 항상 태극기와 함께했구나'를 최대한 전달하려 했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 기자간담회에서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오는 11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태극기와 함께해온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을 조명한다. 태극기에 담긴 한국 역사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은 태극기를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을 넘어 '함께의 기호'로 바라본다.
전시는 1945년 12월 만들어진 '해방 기념 시집'으로 시작한다. 해방의 감격과 미래의 희망을 우리말로 노래한 최초의 시집으로, 정인보, 정지용, 안재홍, 조지훈 등 24명의 문인이 참여했다. '해방 기념 시집' 옆으로는 김달진의 시 '아침'의 일부가 인용됐다.
이날 전시 소개를 진행한 이도원 학예연구사는 "'해방 기념 시집'은 광복을 맞이해 좌우를 망라한 문인들이 각자의 기쁨과 소망, 희망과 미래를 담은 시집"이라며 "김달진의 시 '아침'에서는 일제 강점기 어두움을 표현했다가 태극기가 전 집에 나부끼게 되면서 산천은 크게 웃었다로 변화하는 표현이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 동선은 19세기 말에서 광복까지, 다시 현대사와 오늘날의 일상으로 이어진다. 첫 전시 공간에서는 태극기가 공식 국기로 선포된 1883년 이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극기가 그려진 '신축진찬도 병풍', '독립신문', 애국가 악보 등으로 국가 행사, 외교, 출판 속 태극기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는 프랑스에서 125년 만에 돌아온 태극기도 있다.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품인 이 태극기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출품작으로 추정된다. 정사각형 모양이며, 사괘 부분이 검은색이 아닌 파란 물감으로 칠해져 있어 지금의 태극기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 학예연구사는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 참여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조선이 세계열강 사이에서도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 태극기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경술국치 하루 전날 군함 광제호에서 내려진 '광제호 태극기', 3·1운동 직후 일제의 가택수사를 피해 장독대 밑에 숨겨 지켜낸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진관사 칠성각 복원 가운데 90년 만에 나온 '진관사 태극기' 등이 그 주인공이다.
또 백양사 괘불함에서 발견된 '백양사 태극기', 독립운동가 김붕준·노영재 부부가 직접 구매한 천으로 바느질한 '임시의정원 태극기'와 3·1운동 당시 학생들이 제작한 '평양 숭실학교 태극기' 등도 전시됐다.
광복 이후 태극기는 새로운 길을 걷는다. 전쟁과 민주화 시위 현장, 도전의 순간과 일상의 자리까지 함께한 깃발이 된다. 마지막 전시실은 다른 공간보다 한층 밝은 조명과 벽면, 전시대에 파란색을 더해 '기쁨과 슬픔, 희망을 담아'라는 주제를 표현했다.
이 공간에는 6·25 전쟁 참전 장병들이 무운을 기원한 '무운장구 태극기', 1980년부터 1년간 구축함에 걸린 '구축함 함장 태극기',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박관현 열사의 관에 덮였던 '박관현 태극기' 등이 모였다. 히말라야 정상과 남극 세종기지에 오른 태극기, 결혼식·졸업식·2002년 월드컵 등 일상 속 태극기를 담은 사진도 볼 수 있다.
이 학예연구사는 "태극기의 역사를 돌아보면 태극기에 하나하나 마음을 담은 사람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된다"며 "역사적인 부분을 떠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태극기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시했다"고 말했다.

특별전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에서는 국내외 태극기 실물 18점뿐만 아니라 태극기와 관련된 200여점의 자료도 전시된다. 사진·그림·출판물, 각종 유물로 125년 전 파리, 80년 전 광복, 오늘날까지 이어진 태극기의 시간이 박물관 전시실 안에 펼쳐진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한수 관장에 따르면 해방 직후 8월 15일은 독립기념일로 불렸지만, 더 깊은 의미를 담아 '빛을 되찾은 날'이라는 뜻의 광복절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수 관장은 "되찾은 빛은 민족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겠지만, 각자가 삶의 주인이 되는 권리인 주권을 회복한 날도 의미한다"며 "이 전시가 관람객이 스스로 역사의 주인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