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의성'의 경계를 허물고, 창작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국제기획전 '합성열병'에서 'AI는 정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AI가 창작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잠재된 문제들을 9명의 예술가의 작품으로 탐구한다.
18일 서울 강남구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린 '합성열병' 기자간담회에 이번 전시에 참여한 정영호, 방소윤, 장진승 작가가 참석해 작품을 소개했다. 전시에는 이들을 포함해 총 9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해 사진·회화·미디어 설치 등 약 30점을 선보인다.

정영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AI가 생성한 가상의 인물 사진을 스크린에 띄운 후, 이를 다시 카메라로 촬영한 작업을 선보인다. 정 작가는 AI가 만든 이미지가 실제 존재하지 않으며, 스크린으로만 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AI가 가진 가상의 성질을 강조하고자 스크린을 직접 촬영해 RGB 픽셀이 조합되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정 작가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선정하는 과정도 언급했다. 그는 "AI가 보통 단체 사진을 생성하는데, 그중 너무 완벽하게 현실 같은 인물과 너무 엉성한 인물 사이에 있는 중간 지점의 인물을 선택했다"며 "성별, 표정 등이 모호하고 언뜻 보면 형제처럼 닮은 사진을 골라 취합했다"고 설명했다.

방소윤 작가는 AI 이미지 생성 기술을 활용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이를 캔버스에 옮긴 작품을 전시한다. 방 작가는 3D 프로그램 '블렌더'에서 고양이 탈처럼 생긴 가면 '무제'를 얼굴에 쓴 인물을 제작한 후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재구성(reimagine)했다. 하지만 AI는 탈과 인물의 경계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혼합했다.
방 작가는 "AI는 탈의 특징적인 부분을 만들어주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기 힘든 이미지를 생성했다"며 "여기서 탈과 인물 사이의 격차는 오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변형하며, 그중 일부를 선별했다. 이후 선별한 이미지에서 다시 일부 요소를 추려 캔버스에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가상과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이 과정에서 방 작가는 디지털 텍스처의 매끄러움을 가시화하기 위해 미세한 입자를 표면에 분사하는 에어브러시를 활용했다. 그는 "붓과 달리, 에어브러시는 캔버스 표면에 직접 닿지 않는 도구"라며 "에어브러시도 표면과 완전히 닿지 않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드는데, 이는 작업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장진승 작가는 기계의 시각 체계를 탐구한 영상 '깊은 정찰: 스펙트럼 해독자'를 선보인다. 15분 길이의 이 작품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기계가 감지하는 세계와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의 차이를 조명한다.
장진승 작가는 "'과연 기계는 무엇을 바라보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는 기계의 어떤 부분을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작업을 이어갔다"며 "너무 많은 내용을 담기보다, 생성형 AI가 무엇을 생성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작업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김현석, 양아치, 로렌스 렉, 요나스 룬드, 프리야기타 디아, 호 루이 안 등의 작가도 전시에 참여한다. 김현석 작가는 텍스트 생성 인공지능 모델 GPT-3과 공동 집필한 소설을 오디오북 형태로 선보이며, 양아치 작가는 감시 기술과 데이터 센터 등을 탐구한 작업을 전시한다.

로렌스 렉은 2065년 가상의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예술과 AI의 관계를 SF적 서사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인다. 요나스 룬드는 생성형 AI로 제작된 영상과 이미지를 활용해 자동화 사회가 인간 사회의 구조, 정체성,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프리야기타 디아는 데이터 추출주의와 식민주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비디오 작업을, 호 루이 안은 렉처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자신의 논지를 설명하는 자료와 함께 AI가 실시간으로 생성한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처럼 '합성열병'에 참여한 작가들은 AI가 창작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며, 기술 발전이 불러온 변화와 인간의 반응을 포착한다. AI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동시대 작가 9명의 시선으로 조명한 '합성열병'은 오는 19일부터 6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에서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