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장에 빵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무대 한편에는 잎새 하나 없이 마른 나무가 서 있다. 나무를 지나 무대에 오르면 손님을 맞이하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고, 한쪽에는 빵 진열장과 작은 전기오븐이 자리하고 있다. 1947년 군산의 작은 빵집 '동백당'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이 개막했다. 이 작품은 군산의 빵집 '동백당'의 1년을 배경으로 한다. 독립운동가의 두 아내 '여왕림'(박윤정)과 '공주'(황세원)는 각각 '동백당'의 작은 사장과 수석 제빵사로서 빵집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물자 부족과 빚 독촉, 대형 제과점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다.

해방 직후 군산은 전국적인 홍수로 발생한 열병의 유행, 기술과 물자의 부족, 직업과 가족을 잃은 사람 등 상실이 만연한 상황이었다. 이 시기의 '동백당'에는 전쟁과 재해로 가족을 잃거나, 장애를 얻거나, 강제 노역 후 귀환한 조선인들과 늙고 병들어 버려진 일본인들이 등장한다.
빵집 사람들은 이들과 함께 기울어져 가는 '동백당'을 되살리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어 글과 제빵 기술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상실과 결핍을 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법을 서로에게 배운다.
'동백당'의 인물들 대사에는 '그냥'이라는 말이 특징적으로 반복된다. "꼭 누가 알아줘서 헙니까. 꼭 뭘 할 수 있어서 해요? 그냥 하는 거지", "그냥, 앞으로 나아가잖아" 등 인물들은 계속해 '그냥'을 언급하며 어떤 대의나 명분 없이 서로의 손을 '그냥' 잡아주는 용기를 보여준다.
진주 작가는 지난 11일 "지금의 여러 한계를 지켜보면서 연대가 얼마나 어렵고 고단하며 용감한 것인가를 생각한다"며 "극 중 인물들은 자주 '그냥'이라고 말하면서 선의를 베풀고 나아간다. '그냥'이라는 말 뒤에 숨은 따듯한 향과 강렬한 용기를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연대는 작품 속 인물들 사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직사각형의 긴 무대 양쪽 가장자리에 객석을 배치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 관객들은 '동백당'의 공간을 공유하는 또 다른 손님이 돼 극 중 열리는 '빵 시식회'에 참여하며 맛, 냄새, 온기를 '동백당' 사람들과 함께 연대를 경험한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얇은 막도 이번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이 막은 무대를 안과 밖으로 구분하지만, 완전히 차단하는 벽이 아닌 희미한 경계선 역할을 한다. 양쪽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서로 다른 형태의 움직임을 감상하게 되며, 막 너머의 장면이 온전히 보이지 않는 연출은 관객마다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은 객석을 무대 위로 올려 경계를 허물고, 실제 빵을 나누며 공간의 몰입도를 높이는 등 독특한 연출로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 '빵'을 매개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인간의 성장을 표현한다.
소란스럽지만 따듯하고, 위기 속에서도 희망이 솟아나는 '동백당'의 이야기는 오는 2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