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은 경계와 한계 없이 상대를 구별하지 않고 한 데 어울려 섞이고 흩어지는 '이방인'과 닮은 특성을 지녔다. 세 명의 이방인(구정아 작가, 이설희·야콥 파브리시우스 공동 예술감독)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대한민국을 표현할 수단으로 '향기'를 택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는 지난 2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구정아 – 오도라마(Odorama) 시티' 전시 계획안 발표 및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전시는 2024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중 한국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 개최되며, 현대미술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가장 대표적인 행사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는 구 작가, 이 예술감독(쿤스트할 오르후스 수석 큐레이터), 야콥 파브리시우스 예술감독(아트허브 코펜하겐 관장), 정병국 아르코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구 작가는 부서지거나 사라지기 쉬운 일상의 장면과 사물의 특성을 포착해 평범함의 시적인 측면을 일깨우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향기, 드로잉, 회화, 조각, 설치, 무빙 이미지, 건축 프로젝트, 시, 소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시각예술의 재료로 끌어오는 한편 소소하고 내밀한 경험과 대규모 몰입형 작품을 융합해 일상의 시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이번 전시는 1995년 한국관 개관 이후 첫 공동 예술감독 체제로 운영된다. 야콥 파브리시우스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전체 주제인 '이방인(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구 작가와 두 공동 예술감독은 고국을 벗어나 세계 각지에서 작업 중인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시는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중심 주제로 공간을 재구성했다. 구 작가와 전시팀은 지난해 6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설문(오픈 콜)을 실시해 600개 이상의 답변을 수집했다. 오픈 콜은 한국 외교부, 재외 한국대사관, 한국계 입양인 및 세계 각지의 한인 등 한국인뿐만 아닌 여러 국적을 가진 외국인을 포함해 남한에 정착한 북한 새터민을 모두 아울렀다.
구 작가는 오픈 콜을 거쳐 수집한 응답을 디퓨저 조각(조형 작품), 전시장 바닥의 무한대 기호,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구현된 두 개의 나무 설치 작품, 월 페인팅, 17가지의 향 등 5가지 요소로 구현했다. 전시팀은 오픈 콜 사연 중 주제어를 선택해 커머셜 향수(시대 종합)를 위한 키워드 약 20개를 1차 선별하고, 16개의 설치 향수(시기별)를 위한 키워드 20개를 2차로 골랐다. 이후 향수 제작 기업 논픽션(Nonfiction)이 주제어와 스토리를 해석해 제작한 향 중 커머셜 향 1개와 16개 설치 향을 최종 결정했다.
주목할 점은 시대에 따라 응답 중 공통된 키워드가 도출됐다는 점이다. 예시로, 1960년대와 관련된 응답은 소나무, 샌달우드, 소금 등 자연과 가까운 향기를 떠올린 비율이 높았다. 반면 1970~80년대는 오염된 공기, 먼지, 매연 등 부정적 키워드가 주를 이뤘다. 1990~2000년대는 밥 짓는 냄새나 공중목욕탕 냄새 등 따듯하고 정겨운 분위기, 2010년부터는 뜨거운 매연, 차가운 금속 냄새 등 도시화의 영향이 엿보였다.
전시 구성 중 디퓨저 조각은 구 작가가 1990년대 창안한 무한 변신의 개념인 '우스(OUSSS)'를 상기시킨다. 우스는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명확한 경계 없이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곳으로의 확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향기와도 닮아 있다.
전시명인 오도라마 역시 향기를 뜻하는 'Odor'와 드라마(rama)를 결합한 단어다. 구 작가는 향을 통해 공간과 관람자 사이의 에너지 연결을 모티브 삼고, 세계화를 맞아 확장될 한국인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며 대한민국의 범주가 넓어지고 쉽게 한국인으로 포섭되지 않는 이들과의 교류가 이뤄지기를 고대한다.
구 작가는 "이제까지 제가 할 수 없었던 협업을 이번 기회에 시도하고 싶었다"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과의 협업들은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준 아르코 팀과 예술감독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예술감독은 향 구성에 대해 "전시회를 구성한 향 중에는 아름답지 않은 향도 있다"며, "우리가 느끼는 냄새는 아주 다양하고 향이라는 단어에 가미된 미학적인 의미 부여를 피하기 위해서 향과 냄새라는 두 가지 단어를 병용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심 소재로 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삶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조명하려 했다"고 밝혔다.
전시를 위해 수집된 약 600편의 오픈 콜 이야기는 프리뷰 첫날인 오는 4월 17일 한국관 홈페이지에서 공개된다. 오픈콜 향기 사연 모집에 참여한 모든 참가자들의 이름도 2024년 한국관 전시 도록에 함께 게재될 예정이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국제전시전은 오는 4월 20일부터 7개월간 베니스 자르디니 및 아르세날레 전시장 등에서 열린다. 프리뷰는 4월 17일부터 19일까지다. 한국관은 4월 17일 오후 4시 공식 개막식을 진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