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있다.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보아뱀은 주인공이 어릴 적 그린 그림이지만, 모두가 밀짚모자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유일하게 그 그림을 알아봤다.
최근 하림의 HMM 인수 과정에서 적지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부분 하림의 인수 시도가 '승자의 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승자의 저주란 기업이 무리하게 인수합병을 성공한 이후 자금난 등 경영위기에 봉착하거나 지속적으로 후유증을 겪는 것을 뜻한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기업 규모로만 보아도 2023년 3분기 IR 기준 현금성 자산이 1조2936억원에 불과한 하림이 현금 및 현금성 자산 14조 이상을 보유한 HMM을 인수하기에는 지출이 지나치게 크다.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이자만 매년 2600억원 가량을 지출해야 한다. 하림의 계열사 중 팬오션 영업이익이 2023년 1~3분기 합산 3171억원 정도니 그야말로 제 몸집보다 큰 코끼리를 잡아먹는 보아뱀이다.
HMM은 하림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삼키기 쉽지 않은 규모의 기업이다. HMM은 우리나라 해운 기업 중 1위 규모를 자랑하며 자산 규모만 25조가 넘는 기업이다. 입찰에 참여했던 동원그룹, LX그룹 중 HMM보다 규모가 큰 기업은 없다.
기업가라면 큰 꿈을 꿀 수 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림은 HMM 인수 시도 과정에서 이를 누락한 듯하다.
두산그룹은 2007년 밥캣을 인수할 때 인수 자금을 대부분 차입으로 마련했고, 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때 급격하게 경영악화를 겪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사모펀드 등을 활용했으나 그 결과 본래도 건전하지 않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금호건설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해야 했다.
하림이 인수를 위해 제시한 금액인 6조4000억원 중 인수 자금 대부분이 차입금, 팬오션 유상증자, 영구채 발행, 인수금융 등으로 마련한다는 주장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경기가 좋을 때여도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해운 산업의 부진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중이다.
하림으로서는 팬오션 인수 사례를 되짚어봤을 수도 있겠다. 하림은 지난 2015년에도 JKL파트너스와 공동인수자로 나서 팬오션을 인수한 뒤 10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해 영업이익을 4배 이상 끌어올렸다. 당시에도 하림의 자금조달능력에 대한 의문이 많이 제기됐었으나 결국 하림은 성공했다.
하림은 지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리고 '보아뱀'임을 알아볼 어린 왕자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어린 왕자는 이 별에 없는 특별한 존재였고, 주인공은 '사고'로 인해 위기에 빠졌을 때 어린왕자를 마주했다. 과연 하림의 보아뱀을 알아볼 어린왕자가 시장에 있는지, 하림이 처하게 될 위기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