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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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상품의 독점 판매를 인정하는 '배타적사용권' 신청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상품 개발에 보수적인 보험사 움직임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지만 제도 자체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뚜렷하다.

26일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부터 이날까지 심의가 완료됐거나 심의 결과 발표를 앞둔 배타적사용권 신청 건수는 9건이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18건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의 급감이다.

당장 보험사들 사이에선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으로 유동성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전체적인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거론된다.

그러나 상품 개발에 들이는 노력 대비 부여받는 독점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이른바 '가성비'가 떨어지며 이참에 제도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1분기 신청 건수 0건…제도 '무용론' 떠올라 = 배타적사용권은 일종의 보험 '특허권'이다. 특정 보험사만의 상품 독창성을 인정받으면 해당 보험사가 3~12개월의 독점 판매 권리를 갖는 제도다. 다른 보험사에서는 이와 유사한 상품을 내놓을 수 없다.

이런 장점이 있어도 올해 1분기 보험사들의 배타적사용권 신청은 한 건도 없었다.

2분기인 지난 4월에서야 삼성생명이 '중증 무릎관절연골 손상보장특약N5(갱신형·무배당)'과 '특정순환계질환 급여항응고제 치료보장특약N5(갱신형·무배당)' 등에 각각 3개월씩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다.

같은 달 현대해상은 '항암방사선약물치료후 5대질병진단'과 관련한 신규 위험 담보에 대해 6개월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고 다른 1건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후에는 하나손해보험이 '해외 폭력상해피해 변호사선임비 보장' 심의를 신청해 3개월간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다.

◇새 회계기준 도입에 "내실화 집중" 분위기도 한몫 = 올해 배타적사용권 신청이 급감한 것은 IFRS17 도입이 가장 큰 이유로 첫손에 꼽힌다.

IFRS17 도입으로 보험사들은 장기·보장성 위주 전략의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나서고 있다. 결국 이들 보험사는 새로운 상품 개발보다는 장기·보장성 상품 중심의 내실화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IFRS17 도입 이후 신뢰도 문제 등이 겹친 데다가 과도기를 통과하고 있어 신상품 출시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힘쓰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보험업계 관계자는 "배타적사용권은 보험사의 독창적인 신상품 개발 의지와 직결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올해 회계제도 변경 대응과 유동성 해결이 보험사마다 큰 이슈여서 신상품 개발에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심의 과정 문제" 지적도…'가성비' 떨어진다? = 하지만 일각에서는 배타적사용권 심의 과정을 꼬집었다.

먼저 배타적사용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손해보험사의 경우 신상품심의위원회를 통해 독창성, 유용성, 진보성 등을 심사받는다.

신청서를 제출한 보험 상품은 심의에 출석한 심사위원의 3분의2 이상에게 한 명당 80점을 얻어야 한다. 심의 결과에 따라 평균 95점 이상이어야 1년 배타적사용권을 부여받으며 90점 미만은 3~6개월에 그친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부여받은 배타적사용권도 타 보험사가 작심하고 베끼면 시장 선점 효과를 무방비로 뺏길 수 있어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달린다.

실제로 2020년 배타적사용권을 확보한 DB손해보험 '(무)프로미라이프 참좋은 운전자보험 2004'를 두고 한 보험사가 독점 기간에 유사한 담보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DB손해보험은 해당 보험사를 손해보험협회 심의위원회에 신고하며 배타적사용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중소형사들은 "대형 보험사 위한 제도…개선하자" = 중소 보험사들은 배타적사용권을 두고 "자본력을 갖춘 대형 보험사들의 독점 영역이 된 상태여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배타적사용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신상품 개발이 우선인데 이를 위한 자본이 부족한 중소 보험사들은 신상품 개발에 나서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대형 보험사 중심의 시장 지배력이 공고해지고 인지도 격차가 더욱 벌어져 소비자 선택 폭이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한 중소 보험사 관계자는 "대형 보험사와 비교해 신상품 개발 인력부터 예산까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여기에 더해 비용 회수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해 중소형 보험사의 선택과 집중에서 배타적사용권 신청은 후순위로 밀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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