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심이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경영'을 신념으로 삼았던 고 신춘호 회장의 뚝심 경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농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라면을 만들어낸 신 회장의 품질 경영 정신을 돌아본다.
오는 27일은 농심 창업주 고(故) 신춘호 회장이 타계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1930년 12월 1일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난 신춘호는 6.25 전쟁 통에 10대를 보내면서 고등학교에 늦게 입학했다. 덕분에 부산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에서 일하면서 일찍 사업에 발을 들였다.
신춘호는 쌀이 계절마다 달라지는 것을 눈여겨 보면서 추수 때 쌀을 싼값에 사들인 뒤 이듬해 춘궁기에 비싸게 팔려했으나 쌀이 변질돼 오히려 큰 손해를 입었다. 신 회장이 품질을 중시하게 된 계기다.
신춘호가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든 것은 여덟 살 위 맏형인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 영향이 크다. 신춘호는 대학 졸업 후 신격호의 사업을 도우면서 사업에 발을 담그게 된다.
롯데를 세운 신격호가 롯데껌으로 성공 과도를 달리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서열 5위까지 올려놓는 사이 신춘호는 30대 중반까지 일본롯데 이사로 재직하면서 형을 도왔다.
신춘호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착안해, 신격호에게 라면 사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라면 시장은 삼양식품이 8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신격호는 당시 라면 시장이 포화 시장이라 보고 반대했다.
오기가 생긴 신춘호는 명동 사채시장에서 500만원(현재 2억원 이상) 빌려 36세가 되던 1965년 롯데공업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라면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를 탐탁지 않게 본 신격호는 급기야 신춘호에게 '롯데'라는 이름을 떼라 하고 이 사건으로 형제는 의절하고 롯데가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 선친 제사도 따로 지내고 먼저 세상을 떠난 형의 장례식에도 신춘호는 참석하지 않았다. 두 형제는 끝내 앙금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롯데공업에서 '농부의 마음'이라는 의미를 담은 농심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던 1987년 신춘호는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첫 라면을 생산한 1965년, 신춘호는 라면연구소를 세우고 연구개발 부서 따로 둘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다. ‘품질경영’으로 차별화 포인트를 잡고, 기술개발과 설비확충에 적극 투자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제대로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경쟁에선 절대 뒤지지 말라"고 강조했다.
국내 라면이 닭고기 육수를 쓰던 시기 한국인 입맛에 맞는 소고기 장국과 매운맛 조화를 이룬 라면을 고민해 1970년 소고기라면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이후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등이 잇따라 성공시키며 1985년 점유율 42%로 1위에 올랐다.
1986년에 출시된 신라면은 1990년부터 현재까지 33년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1963년 국내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이 1986년까지 20년간 1위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룬 쾌거다.
스프개발에 몰두하던 신춘호는 어느 날 식당에서 사람들이 설렁탕 국물에 김칫국을 넣어 먹는 것을 보고 신라면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름도 자신의 성(性)과 같은 '매울 신(辛)'을 붙이고 임원들에게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신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렇게 탄생한 신라면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100개국에 수출되는 라면이다.
신라면과 더불어 육개장사발면도 꾸준히 사랑받는 제품이다. 1982년 출시된 육개장사발면은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사발'이라는 이름과 모양을 고수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엔 공식라면으로 지정됐다.
2011년에 컵라면 시장 1위에 오른 후 12년째 자리를 유지 중이다. 지난해엔 1200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 기록했으며, 컵라면 단일제품으로 유일하게 연 매출 1000억원 이상 기록하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2021년 3월 27일 별세 전 신춘호가 마지막으로 한 업무지시는"50여년간 강조해온 품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짚으면서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말고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세계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농심은 오는 27일 고 신춘호 명예회장 타계 2주기를 맞아 회사 차원의 추모행사를 열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