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수습 장면. 사진 제공=문화재청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수습 장면. 사진 제공=문화재청 

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精髓)로 알려진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가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보로 지정하고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손소 적개공신교서', '이봉창 의사 선서문'등 고려·조선 시대 전적, 근대 등록문화재 6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했다. 

국보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에서 나온 유물로, 639년(백제 무왕 40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 사리봉영기와 함께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을 포함해 총 9점이다.

사리장엄구 중 금제 사리봉영기는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 앞·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를 새겼으며, 내용은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에 대한 기원을 담은 것이다.

그동안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힌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사리장엄구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서체 역시 곡선미와 우아함이 살아있는 백제서예의 경향과 함께 절대 연도가 있는 유물이 부족한 삼국시대 서예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리장엄구 중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는 모두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독창적인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몸체의 알맞은 비례와 유려하고 생동감이 뛰어난 문양 등 기형(器形)의 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한껏 드러나 있다.

사리장엄구 중 청동합은 구리와 주석 성분의 합금으로 크기가 각기 다른 6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동합 중 하나에는‘달솔 목근’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달솔이라는 벼슬(2품)을 한 목근이라는 인물이 시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문을 바탕으로 시주자의 신분이 백제 상류층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와 함께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되어 희귀성이 높다. 녹로로 형태를 만든 동제 그릇으로, 일부는 우리나라 유기 제작 역사의 기원을 밝혀 줄 중요한 사례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하여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되어 출토지가 명확하고,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해주는 한편 동아시아 사리공예품의 대외교류를 밝혀주는 자료로서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한편, 보물로 지정된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과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모두 고려 11세기에서 12세기 동안 만들어진 불교경전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보물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은 총 100권으로 구성된 유가사지론 중 권66에 해당하는 고려 11세기에 간행된 자료로, 해당 권차는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유일본이다. 고려시대에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읽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이 표시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총 120권으로 이루어진 '대방광불화엄경소'의 권88에 해당하는 자료로, 1087년 우리나라에 목판이 전래되면서 국내에서 간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1424년에 일본이 여러 차례 대장경판을 요구할 때 다른 경판들과 함께 하사했으므로, 그 이후에 찍은 간행본은 국내에서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는 귀중본이다. 12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동일판본 가운데 유일하게 알려진 권차이다.

종로도서관 소장 보물 '불조역대통재' 14책도 보물로 새롭게 지정됐다. 원나라 승려 염상(1282~?)이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1334년까지 고승들의 전기나 일화들을 시간 순으로 엮은 책으로, 1430년 다시 간행된 판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새긴 목판을 1472년 인수대비의 발원으로 찍은 것이다. 왕과 왕자, 공주 등 왕실의 안녕과 장수를 위해 발원하고 간행한 것으로, 전체 권차가 남아 있는 완질본일 뿐 아니라 현재까지 국내에서 두 건만 확인되어 자료적인 완전성과 함께 희소성 또한 높다.

보물 '사시찬요'는 중국 당나라 말기인 996년에 한악이 편찬한 농업 서적으로, 춘하추동 사계절을 12달로 나누고 월별의 농법과 금기 사항, 가축 사육법 등을 수록해 놓은 책이다. 조선 초기 농정과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도입해 세종 때 '농사직설'이 편찬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농업경영에 참고한 대표적인 관련 서적으로 활용됐다. 민생을 위한 농업의 증진, 고려와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사실 뿐 아니라 간행 당시의 사회경제사의 배경까지 살펴볼 수 있다. 

보물 '손소 적개공신교서'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동마을에 대대로 거주해 온 경주 손씨의 후손 손소(1433~1484)가 하사받은 적개공신교서 1점이다. 손소는 1467년 5월 이시애의 난 때 군사업무를 담당하고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 2등에 책훈되고 내섬시정으로 특진되었다. 이시애의 난 및 그에 대한 국가의 조치, 공신으로 책훈된 인물, 공신에 대한 각종 은전 및 특전에 대한 구체적 사례 등에 관한 역사적 내용을 제공하고 있어 조선시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보물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12월13일에 작성된 것으로, 이봉창 의사(1900~1932)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한 국한문혼용 선서문이다. 이 선서문은 김구가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에 제출된 것이다. 이 날 서명을 마친 이봉창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막내동생이자 한인애국단 임원이었던 안공근의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문을 가슴에 단 채 기념사진을 촬영했으며, 이 때 찍은 흑백사진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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