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머니무브를 우려해 ‘커닝 공시 금지’를 시행했다. 과다경쟁 제한으로 금리가 낮아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8%대 이율의 원리금 보장상품까지 등장했다. 당국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44개 퇴직연금 사업자와 46개 상품판매제공자 등 총 90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퇴직연금 원리금보장상품에 대한 공시 이율을 영업일 3일 전 사전 공지하도록 했다. 비사업자가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공시한 이율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커닝 공시’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첫 시행 결과 금리 격차는 역대급으로 벌어졌다. 

은행권은 평균 4%대 후반, 보험업계는 평균 5%대, 증권업계는 평균 6%대의 금리를 공시했다. 문제는 일부 증권사와 저축은행 등이 예상치를 웃도는 7~8%대의 높은 이율을 공시했다. 특히 키움증권은 8.25%를, 다올투자증권은 무려 8.5%의 이율을 공시했다. 8%대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전월(7.25%) 대비 0.75%포인트(p) 증가한 수치다.

사업자와 비사업자의 동시 이율 공개로 금리경쟁이 잦아들 것이란 당국의 예상과 다르게 ‘눈치싸움’으로 변질되며 크게 빗나가버린 모양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의 금리경쟁 제한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반증하는 것”이라며 “당국에 한번 찍히는 것이 회사가 망하는 것 보다 낫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당국 지침에 따라 금리를 낮춘 금융사들은 역으로 대규모 머니무브 위험에 노출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퇴직연금 상품 결정시 통상 금리뿐 아니라 유동성 리스크도 함께 고려하기 때문에 너무 높은 금리를 제시한 곳으로의 적극적 이동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우려 잠재우기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높은 금리를 제시한 금융사들이 타사의 물량을 과도하게 뺏어와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계속 모니터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보다 강력한 규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업계의 유동성 리스크 불안감은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콜옵션 번복 사태로 극에 달한 상태”라며 “당국이 ‘금리상한 설정’이나 ‘물량 규제’ 등의 더 강력한 규제를 뽑아 들어 머니무브를 막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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