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사진=픽사베이
영화관. 사진=픽사베이

극장과 VOD,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이 유통 시간을 조율하던 '홀드백'이 사실상 해체됐다. 영화는 더 빨리 공개되고 짧은 시간 안에 소비되며, 집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여정을 택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다수의 대형 한국영화가 얼리 프리미엄 VOD를 거쳐 영화 개봉일 기준 약 3개월 만에 구독제 OTT에 영화를 공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VOD를 거치지 않고 개봉 한 달 만에 넷플릭스에 지난 2월 3일 공개됐다. 같은 달 개봉한 영화 '하얼빈'은 지난 2월 21일부터 VOD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오는 25일 넷플릭스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밖에 '소방관', '대가족'도 현재 넷플릭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 극장 개봉과 SVOD(구독형 VOD) 공개 사이 간격이 과거 9~12개월에서 현재 3개월 내외로 단축된 것이다.

2020~2024년 TV VOD 시장 매출 규모(위), 2015~2024년 TV VOD 이용건수. 사진=영화진흥위원회 보고서 캡처
2020~2024년 TV VOD 시장 매출 규모(위), 2015~2024년 TV VOD 이용건수. 사진=영화진흥위원회 보고서 캡처

홀드백은 영화 산업 내에서 유통 시점을 창구별로 조절해 각 시장의 수익 흐름을 나눠주는 역할을 해온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팬데믹 후 홀드백이 사실상 무너지며 극장 외 시장 매출에도 타격이 나타났다. 영진위 보고서에 따르면 TV VOD 매출은 2019년 4059억 원에서 2024년 1698억 원으로 58.1% 감소했다.

홀드백은 영화의 소비 기간을 늘리는 역할도 해온 것으로 분석된다. 영진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TV VOD 전체 이용 건수는 6476만건에서 2024년 1882만건으로 80.9% 감소했다. 이는 홀드백이 무너지며, 영화가 다양한 창구에서 차례대로 소비되기보다 OTT 중심으로 소비가 이뤄지면서 수요가 급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가 유통 창구를 거치며 소비되던 구조가 사라지면서 관객도 더 편리한 방식으로 영화를 소비하려는 흐름이 강해졌다. 영진위 보고서에 따르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횟수가 줄었다고 답한 사람 중 '영화관 상영 종료 후 OTT나 IPTV 등의 매체로 감상하는 것이 더 편리해서'라고 61.3%가 응답했다.

영화관 관람 감소의 이유. 사진=영화진흥위원회 보고서 캡처

홀드백 체계가 붕괴하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23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영화 개봉 펀드 투자 작품만 시범적으로 홀드백 의무를 적용했다. 독립영화계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독립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독립영화의 극장 상영 기간을 8주간 확보해 독립영화 생태계를 개선하려는 '8주간의 약속' 상영 캠페인이 시작됐다.

영화계에서는 홀드백 제도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다만 배급사나 중소 제작사에서는 일괄적인 적용보다는 유연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가 극장에서 오래 상영하면서 관객을 계속 유치할 수 있다면 홀드백 자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다만 흥행이 기대만큼 되지 못했을 때 극장에서 내린 영화가 2차 시장으로 바로 넘어가지 못한다면 수익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급사는 영화 한 편으로 최대한 수익을 내고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구조"라며 "모든 영화에 일괄적으로 동일한 홀드백이 적용되면 유연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중소 제작사 대표는 "지금처럼 OTT 플랫폼에서 빠르게 콘텐츠가 풀리는 구조에서는 관객도 '조금 기다리면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 극장 소비 자체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홀드백은 결국 콘텐츠의 가치를 지켜주는 역할도 하기에 OTT 공개는 일정 기간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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