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의 원리금 보장형 상품 편중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증권업계가 눈에 띄게 고른 분포를 보이는 가운데 은행·보험업권은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치중하고 있다. 이런 편중 정도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업권별 전략 개선이 함께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8일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총 약 40조670억원이다. 이 중 초저위험상품 적립금은 35조 3386억원으로 전체 적립금의 88%를 차지했다.
금감원은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취지가 수익률 제고에 있는 만큼 원리금 보장형 초저위험 상품에 편중된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제도 개선 일환으로 올해부터 개별 금융기관의 위험등급별 적립금 비중을 공개하기로 했다. 위험등급별 편중 정도를 직관적으로 인지하기 위한 조치다.
금감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증권사의 고른 적립금 분포 비율이 눈에 띈다.

KB·NH투자·대신·미래에셋·삼성·우리투자·하나·한국투자·한화투자증권 등은 초저위험상품 적립금 비중이 50% 수준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적립금 비중은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상품 등에 비교적 고르게 자리했다.
KB·NH투자·미래·하나·한투증권은 고위험상품 비중도 10% 이상으로 드러났다. 특히 우리투자증권은 초저위험상품 비중이 25.14%, 저위험상품 11.08%, 중위험상품 32.56%, 고위험상품 31.21%로 상품 분포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반면 은행과 보험사는 대부분 초저위험상품 비중이 여전히 90% 수준에 육박했다. 75.82%를 기록한 교보생명보험과 52.12%를 기록한 신한라이프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80~90% 선을 유지하고 있다.

4대 은행을 살펴 보면 KB국민은행은 83.50%, 우리은행은 90.75%, 하나은행은 90.55%, 신한은행은 91.98%이 초저위험상품에 쏠려있다.

이에 금융당국이 계속해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 편중 현상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증권업계를 제외하면 가시적인 발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가 기민한 전략을 취했다는 평가다. 증권업계는 리스크를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려는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치밀하게 구성해 디폴트옵션을 짜고 있다.
반대로 은행과 보험사는 아직까지 보수적인 태도다. 대부분 원리금 보장형 상품 위주로 디폴트옵션을 구성하고 있다.
은행·보험업권은 투자자들이 추구하는 성향에 따라 금융회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대적으로 증권사 고객에 비해 고객 연령층이 높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연령이 높고 퇴직 시점이 가까울수록 위험 부담을 피하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애초에 퇴직연금을 은행에서 가입한다는 것부터 고객이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의미"라며 "지금 퇴직연금 가입 연령이 대부분 은퇴를 앞둔 4050세대기 때문에 더욱 원금 보장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행 창구에서는 직접적인 추천이나 적극적인 가입 권유를 하지 않고 투자 성향 테스트에 개입할 수 없다"며 "은행 차원에서 의미 있는 개선이 이뤄질만한 방안을 내기는 어렵다"고 부연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증권사처럼 위험 상품 위주로 운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며 "이전보다 다양한 위험 고수익 상품들을 많이 편입하고는 있지만 물량이 증권사만큼 많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리스크를 감수하느냐, 안정성을 택하느냐는 고객의 선택이고 그에 따라 은행, 보험, 증권사를 고르는 것"이라며 "보험사에서 증권사만큼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상품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고수익 상품을 편입하려는 노력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당국이 지향하는대로 디폴트옵션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먼저라는 시각으로 집중된다.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포함돼 있는 이상 편중 현상을 완전히 없애긴 힘들다는 것이다.
동시에 은행·보험사들의 디폴트옵션 전략에도 변화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특성과 고객 연령층을 고려하더라도 편중 현상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디폴트옵션을 안내하는 판매원들의 경우 상품 구조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며 "자세한 안내와 설명 없이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편중 현상 자체를 은행·보험업계에 책임을 물을 수만은 없지만 디폴트옵션 구성 방식을 바꿀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