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되고 20년이 지났다.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43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말 기준으로는 382조원을 넘어 5년 간 2배 성장했다.
다만 이는 양적인 성장일 뿐, 질적으로는 충분한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다. 정효영 미래에셋증권 연금컨설팅 본부장은 지난 25일 뉴스저널리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수익률 증대와 TDF(타겟데이트펀드)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익률 올리려면 디폴트옵션 내 원리금보장 비중 줄여야"
현재 연금투자자들의 딜레마는 수익률과 원금보장이다. 특히 나이가 은퇴연령에 가까워질 수록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 리스크가 큰 상품에는 투자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처음 도입 당시에는 은퇴를 앞둔 고객들이 주 수요층이었고, 시장 확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원리금보장 상품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졌다.
정 본부장은 "장기간 가입을 해도 연평균 수익률 자체가 굉장히 낮은 상태"라며 "원인은 자산 배분이 안돼있고, 원리금보장 상품에 완전히 쏠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리금보장에 비중이 쏠리면 나머지를 실적 배당으로 운영해도 수익률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나 계몽보다 제도 도입 필요성이 확대됐고, 그렇게 도입된 제도가 디폴트옵션이다. 그러나 디폴트옵션에도 원리금보장 상품이 쏠리면서 안정적 수익률을 통해 노후 자산을 불린다는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
정 본부장은 "금융기관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디폴트옵션을 고객한테 설명하기 어렵고 복잡하니 원리금보장 상품을 위주로 권유해왔다. 가입자도 복잡한 상품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가입을 해왔다 보니 제도가 오히려 거꾸로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디폴트옵션에서부터 원리금보장 상품을 들어내야 될 필요가 있다. 보수적 성향의 고객들은 직접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디폴트옵션에까지 원리금보장 상품을 넣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 보유 수익률 높아…단절되지 않게 하는 장치 필요"
정 본부장은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TDF나 디폴트옵션 제도가 장기간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간에 상품을 해지한 연금가입자 대부분이 해지 결정을 후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 해지와 가입이 반복되면 수익률 관점에서도 좋지 않은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중간에 상품을 해지하는 원인은 똑같다. 디폴트옵션 제도가 제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디폴트옵션은 나이에 맞게끔 자동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성향에 맞게 가입할 수 있어 연속성을 지니기 힘들다.
디폴트옵션 안에 있는 TDF도 마찬가지다. TDF 상품 자체가 은퇴연령에 맞게 설계가 됐지만, 판매될 때에는 가입자의 나이에 상관없는 상품들이 제공된다는 의미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장기간 운용해도 수익률이 좋지 않고, 알맞는 상품을 찾기 위해 현재 상품을 깨면 다시 수익률이 낮아지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정 본부장은 "TDF라는 건 은퇴 시점을 잡아놓고 쭉 가야 한다. 중간에 상품을 팔고 다른 걸 사면 스케쥴이 다 깨진다. 예를 들어 목표했던 시점에 맞춰 현재 높은 주식 비중을 갖고 있다고 해보자. 중간에 상품을 깰 예정이었다면 처음부터 높은 주식 비중을 가질 경우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돈을 쌓았다가 노후까지 연금으로 활용되는 케이스는 굉장히 적다. 제도적으로 중간에 해지하고 빼가도 패널티도 없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TDF를 준비해도 자꾸 중단이 되는 것"이라며 "미국은 DC형에 한 번 가입하고, 그 돈이 TDF로 들어가면 끝까지 간다. 현재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연금상품이 계속 단절되다보니 TDF가 정상 작동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도 우리가 월급에서 상당 부분을 매달 내고 있지 않나. 꽤 많이 쌓여있지만 국민연금 못 빼는 건 다 안다. 퇴직연금도 똑같이 죽은 돈 셈 치고 훗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같이 받으면 나중에는 쏠쏠한 생활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연금가입의 연속성을 살리기 위해 당근이나 채찍과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입 지속기간에 따라 세제혜택을 주거나, 중간에 해지하는 경우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미국은 퇴직연금을 중간에 해지할 경우 절반 가까이를 징수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의미 있는 노후 자산 위해 수익률 증대 필요…시장 점유율 1위는 따라올 것"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근로소득만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진지 오래다. 매달 받는 월급에서 저축할 수 있는 돈이 한정적이라면, 장기 분산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려야 의미있는 노후 자산을 만들 수 있다고 연금업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조언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의미있는 노후 자산을 만드려면 수익률이 제일 중요하다. 고객의 수익률을 높이는 게 우리의 가장 큰 목표"라며 "최근 수익률은 미래에셋증권이 증권업권 중 1위다. 5년이든 10년이든 이런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면 시장 위치도 알아서 1위로 따라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