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전경. 사진=서울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 전경. 사진=서울고등법원

가습기살균제 속 유해 물질을 제대로 라벨에 표시하지 않고 제조·유통한 SK케미칼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시정명령과 과징금이 정당하다는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30일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정준영 재판장)는 SK케미칼·SK디스커버리(원고)가 공정위(피고)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과징금납부명령 취소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파기환송심이란 대법원이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낸 재판을 말한다. 통상 공정위 처분 불복소송은 2심제(서울고법·대법원)로 진행된다.

재판부는 "공정위의 사건 처분은 적법하므로 원고(SK케미칼)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한다"고 판결했다.

2018년 3월 공정위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주요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독성물질이라는 사실과 흡입 시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정보를 은폐·누락 또는 축소했다며 시정명령과 공표명령 외에 각각 3900만원, 8800만원 등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앞서 공정위는 2011년에 이어 2016년 이들 업체가 판매 중인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표시광고법 위반 신고가 접수되자 조사에 나섰다. 이후 2017년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함유 성분의 위해성을 확인하자 공정위는 재조사를 통해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CMIT와 MIT는 2012년 9월 환경부로부터 유독물로 지정됐다. 

이에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처분시한이 경과했다며 각각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가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용 및 출시자제를 권고한 2011년 8월31일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해 공정거래법상 위반 행위가 종료된 날로부터 5년을 경과한 경우 처분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고법은 SK케미칼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 생산을 중단한 시점이 2011년 8월 말이며 그 다음 달에는 기존 제품을 적극적으로 수거하기 시작했으므로 공정위의 처분은 제척기간(권리의 존속 기간)인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을 지나 이뤄졌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공정위는 불복해 상고를 제기했고 대법원은 2022년 4월 "해당 상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유통하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 위반행위가 종료됐다고 볼 수 없다"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2년 3월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이던 기존의 제척기간을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 또는 행위종료일로부터 7년'으로 바꿨는데 두 업체의 위반 행위가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일(2012년 6월) 이후에 끝났다면 새로운 제척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에 공정위 처분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SK케미칼이 2011년 8월 말부터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가습기살균제를 생산·유통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그 이후에도 제3자에 의해 유통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위법 상태의 종료는 '생산 중단'이나 '적극적으로 수거하기 시작한 시점'이 아니라, 시중에서 문제의 상품이 모두 소비돼 소비자가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는 '위반 행위 종료일'로 정해진다. 위법 상태가 끝나는 시점은 시중에서 문제의 상품이 모두 사라져 소비자가 더는 피해를 보지 않는 때라는 얘기다.

대법원은 "원심은 개정 전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는 것을 전제로 원고가 이 사건 제품의 생산을 중단한 2011년 표시광고행위가 종료됐다고 단정했다"며 "개정 공정거래법에서 조사개시일은 조사착수일이 아니라 위반행위 종료일, 즉 위법 상태가 종료된 때로 이를 기준으로 제척기간 경과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각 (광고) 표시행위는 2002년 10월 또는 2005년 9월부터 2013년까지 약 8~11년 동안 장기간 지속됐다"며 "인체 안전 관련된 정보에 관해 오인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행위고 표시행위 금지만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이미 형성된 그릇된 정보가 완전히 제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SK케미칼의 상고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SK케미칼 관계자는 "재판부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하며 피해자분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피해구제 분담금 납부 등 사회적 책임 이행 노력을 지속하겠다"며 "다만CMIT와 MIT 제품에 대한 위해성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형사소송 재판부도 제품의 위해성이 확인된 동물시험 결과가 없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행정소송의 시급한 판단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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