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월을 좋아하지 않는다. 12월과 3월을 둘 다 싫어하지만 더 싫은 쪽을 고르라면 3월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유난히 많아지는데 그 중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봄이 시작되는 모습을 보면 두 달 동안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자문하게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날이 점점 따듯해지는데 마음 한구석은 이유도 모르고 차게 식기 때문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내가 3월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아마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평생 싫어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봄은 위험한 계절이다. 특히 우울증 환자들의 정신건강에 위험하고, 자살률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고의적 자해(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분기는 4~6월이 해당되는 2분기였다.

월별 분석은 2022년 자료가 가장 최신인데, '사망원인통계' 기준 자살자 수가 가장 높은 달은 4월이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반구 전체에 걸친 현상으로, 봄철 자살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스프링 피크'라는 단어도 있다.

의학적으로는 급격한 날씨 변화가 호르몬에 영향을 줘 계절성 우울증을 유발하고, 기존 우울증 환자들은 일조량이 늘며 감정 진폭 및 충동성 증가로 이어진다고 한다. 심리적으로는 개강, 개학 등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이 많아 불안해지고, 야외 활동이 늘어나며 상대적으로 박탈감이나 고립감을 느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도 한다. 어느쪽이던 불안정한 계절이라는 사실은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2월 말부터 바빠진다. 좋아하는 연극·뮤지컬을 예매하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하루 종일 바쁘게 문화생활을 즐길 계획을 세운다. 나를 지키기 위해 혼자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연극이 막을 내리기 전 혼자 관극도 다녀왔다. 바로 연극 '엘리펀트 송'이었다.

"안소니가 사랑한대."

엘리펀트 송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아하는 대사다. 엘리펀트 송은 실종된 동료 의사 로렌스의 행적을 찾기 위해 저명한 정신과 의사 그린버그 박사가 사건의 목격자인 정신과 환자 마이클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마이클은 로렌스의 행방을 알려주기 전 계약 조건을 붙인다.

첫째, 나의 진료기록을 보지 말 것. 둘째. 진실을 말할 시 나에게 초콜렛을 줄 것. 셋째, 수간호사 피터슨을 제외시킬 것.

연극이 끝나고 집에 가기 전 편의점에서 아몬드 초콜릿 하나를 사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한참을 우물거렸다. 말없이 먹고 있는데 어느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익숙한 일인데 익숙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안소니(마이클이 아끼는 코끼리 인형의 이름이다)를 안고 쉬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서글프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곱씹을 수록 마음이 아픈 동시에 음침하게 쌓여 있던 우울과 고민이 녹아 사라지는 듯했다. 그렇다. 그 순간 나는 '카타르시스'를 겪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연민과 두려움, 슬픔이 내 안의 불순물을 정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 울고 난 뒤 혼자 다짐했다. 우리 집 안소니도 나를 사랑함을 잊지 말자고.(나는 엘리펀트 송을 아주 좋아해, 안소니 인형도 따로 갖고 있다.)

예술은 소소하고 부드럽게 나를 치유한다. 약이나 상담치료처럼 적극적으로 내게 개입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마음을 어루만지고 녹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격렬한 슬픔으로, 유쾌한 즐거움으로, 복잡미묘한 연민과 동경, 그 밖의 감정들로 수용자를 풀어헤치고 상처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술을 즐길 때 그 자체로 집단 치유의 현장에 놓인다.

3월이 곧이다. 봄이어서도 좋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좋다. 혼자면 생각할 시간이 생겨 좋고 둘 이상이면 함께 즐길 사람이 있어서 좋다. 어떤 이유든 한 번쯤 내가 즐길 수 있고 좋아하는 예술과 문화 활동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만일 '엘리펀트 송'이 궁금하다면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OTT를 통해 영화로도 볼 수 있다. 모쪼록 이 봄에도 안소니가 사랑함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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