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걱정에 수산물 섭취를 망설이는 산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픽=김하늘 기자
모유 걱정에 수산물 섭취를 망설이는 산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픽=김하늘 기자

"유독 생선만 남기는 산모들이 있어요"

서울 노원구 모 산부인과의 영양사 ㄱ씨(40대, 여)는 고민이 깊다. 산모의 식사 만족도를 파악하고 재료 낭비를 줄이려 매일 잔반을 확인하는데 최근 수산물 잔반량이 눈에 띄게 는 탓이다.

"수산물 반찬으로 컴플레인까지 들어온다"고 하소연한 ㄱ씨는 "봄에 잡은 굴비라고 설명해도 꺼림직해하는 분들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무리 안전하다고 강조해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먹기를 꺼리는 것 같다"며 "이러다 미역국도 안 먹을까봐 걱정"이라 말했다. 생선을 대체할 반찬은 많지만 평일 아침마다 내놓는 미역국은 바꾸기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대다수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은 하루 한 끼 미역국을 포함해 식단을 구성한다. 산모가 물리지 않도록 소고기, 닭고기, 북어, 들깨, 조개류 등 부재료를 바꿔가며 끓이는 식이다.

미역에는 산모의 회복을 돕고 신생아 발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오딘(요오드), 칼슘, 철분, 인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부드럽게 국으로 끓이면 부담 없이 먹기 좋아 예로부터 훌륭한 산모식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24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방류 이후,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은 민감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산모식은 모유의 양과 성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맛은 물론, 영양과 안전성까지 고루 갖춰 식단을 제공해야 한다. 

산후조리원 관계자 ㄴ씨(50대, 여)는 "언제 채취한 미역이냐 묻는 분들이 있다"면서 "올해는 방류 전에 채취한 미역을 쓴다지만 내년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여러 분점을 보유한 대형 산후조리원은 본사 차원에서 미역을 대량 비축한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가뜩이나 고물가로 식재료비 부담이 큰데 미역값까지 오를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20인 규모 시설에서도 한 달에 약 450인분의 미역국을 조리하는 상황"이라며 "미역국을 식단에서 제외하기란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지난달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 직후 국내 한 대형마트의 건수산물 매출이 약 4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역은 180%가량 증가했다. 또 다른 대형마트에서는 미역을 비롯한 건해조류 매출이 전월 같은 날 대비 두 배 뛴 것으로 알려졌다. 방류 전에 생산된 건수산물을 쟁여놓겠다는 것이다.

사재기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실태 파악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해양수산부는 해양경찰청,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30일부터 주 2회 현장점검을 실시해 천일염, 미역, 다시마, 건어물, 새우젓 등을 살펴본다고 밝혔다.

한 건어물 상점 가판대의 모습. 산모미역으로 널리 알려진 부산 기장 미역 외에 진도 미역, 완도 미역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김하늘 기자
한 건어물 상점 가판대의 모습. 산모미역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 미역 외에 진도 미역, 완도 미역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김하늘 기자

한 재래시장 건어물 상인 ㄷ씨(65세, 남)는 "미역은 소금, 멸치에 비하면 아직 사재기 수준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출산 전에 미리 사두려는 손님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산모용으로 부산 기장 미역이 가장 유명한데, 일본에서 더 멀리 떨어진 완도나 진도 미역을 찾는 손님도 있다"면서 "오염수의 국내 도달 시기를 놓고 정부와 전문가 입장이 너무 달라 장사하는 입장에서 걱정이다"고 한숨 섞인 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방류된 오염수가 4~5년 뒤 우리나라 해역에 유입된다는 입장이다. 오염수가 일본 동쪽으로 확산되면서 미국 서부 해안에 도착한 뒤 남하해 동아시아로 되돌아온다는 얘기다. 오염수가 태평양을 크게 한 바퀴 돌면서 삼중수소 농도가 상당 부분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일부 전문가나 해외 연구소는 더욱 단기간에 유입된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최근 오염수 관련 강연에서 "세슘의 경우 제주는 1개월, 동해는 6개월 이내 도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독일 헬름홀츠해양연구소(GEOMAR)는 약 7개월, 2021년 중국 칭화대 해양공학연구소는 약 9개월 만에 한국 해역에 들어온다고 예측했다. 최근 대만 중앙 기상국은 방류 1~2년 뒤 오염수가 대만 해안에 도달한다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일부 방사능 물질의 경우 산모가 섭취 시 모유로도 분비된다는 사실이 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우려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환경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수유모에게 섭취된 방사능 물질은 모유를 통해 영아에게 전달될 수 있다.

국내 방사능 관련 전문가는 "방사성동위원소는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규정한 '수유독성물질'에 해당한다"며 "산모가 방사능 물질을 섭취하거나 방사성 치료를 받게 될 경우, 의료기관에 문의해 일정기간 수유 중단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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