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 심사를 '조건부 승인'으로 해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제서야 결합승인 구체적 시기가 나온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외국 항공사만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라며 조건부 승인에 반대하고 있다.  


공정위, 연내 심사보고서 상정...'조건부 승인' 가능성 높아


27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정위)

지난 27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정책소통 간담회에서 "신속한 항공결합 심사 진행 및 시정방안 마련을 위해 지난 25일 국토부와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기업 결합으로) 경쟁 제한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시정 조치가 나가야 하는데 항공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그 특성상 효과적인 시정 방안을 마련하고 실제로 이행될 수 있는 감독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감독 당국인 국토부와 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국장)은 "공정위가 어떤 시정조치를 강구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이를 이행할 경우 항공 규제와 관련되는 것이 많다"며 "국토부와 그런 문제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와 협의가 잘 되고 기업 측 협조를 받는다면 이번 기업결합 사안은 연내 심사보고서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관련 연내 심사를 마치고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상정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승인 관련 구체적 일정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심사 일정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 "시장의 불확실성 문제를 최소화하고, 한국 1·2위 국적사 간 결합인 만큼 이를 심사 중인 여러 해외 경쟁 당국에서도 우리 진행 상황을 고려해 (심사)해달라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 10월 5일 있었던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 위원장이 이미 밝힌 내용과 동일하다. 조 위원장은 “양사 M&A가 경쟁 제한성이 있어 일정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심사관의 의견”이라며 “국토교통부의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었다. 

공정위와 국토부는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노선의 시정방안 마련과 향후 시정조치의 이행 감독 등을 협조해 나갈 계획이다. 항공 업계 국내 1위인 대한항공과 2위인 아시아나항공이 결합하는 만큼 인수·합병을 승인할 경우 예상되는 시장 독점을 방지하는 방안이 시정 방안에 주요하게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향후 국토부와 협의를 진행하겠지만 승인을 하더라도 독과점 우려를 일정정도 해소하기 위해 통합 항공사의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는 등 '조건부 승인'이 이뤄질 가능성이 가장 높아졌다.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 지연으로 속 태워온 대한항공...절차 진행은 "다행이지만"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지연으로 속을 태워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되면 두 회사의 국제선 여객노선과 주요 화물노선 점유율의 합은 70% 이상으로 공정위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하는 50%를 훌쩍 넘는다. 이 때문에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 여부는 세간의 관심을 끌어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EU·중국·일본·베트남·영국·호주·싱가포르 등 9개 국가에서 등 필수 신고 국가 경쟁 당국의 기업 결합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기업결함심사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린다면 인수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앞서 터키, 태국, 대만 경쟁당국은 두 회사의 결합을 승인한 바 있다.

공정위가 기업결합 승인을 빨리 해줄 수록 다른 나라의 결합승인을 빨리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결합승인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대한항공은 애가 탔다. 

기업결합 심사가 예상보다 너무 늦어지면서 모든 일정이 꼬였다. 대한항공은 당초 6월 30일 아시아나항공의 주식을 취득할 예정이었으나 기업결함 심사 지연으로 일정을 올해 12월 31로 미뤘다.

대한항공은 지난 6월 아시아나항공의 1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8000억원을 투입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63.9%를 인수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아시아나는 지난 3월 유상증자로 3조3000억원을 확보했고,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1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한 상태다.

이같은 자금 수혈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은 5조원에 달하는 단기 부채 일부를 갚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업결합심사가 늦춰지면서 신주 인수대금 1조5000억원을 수혈받지 못해 막대한 이자비용과 운영자금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구조로 가고 있다.

오는 11월이면 정부 고용유지지원금도 끝난다. 항공사들은 지난해 3월 항공업이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며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있다. 당초 6월 만료 예정이었지만, 3개월 추가 연장됐다. 하지만 11월부터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이 끝나게 되면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대한항공 입장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정상운영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계에서는 공정위의 늦장 기업결합 승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합병 인수와 관계없이 아시아나항공이 파산하면 대한항공은 항공시장에서 독접적 지위를 갖게 된다. 파산을 목전에 둔 기업으로 대항항공 외에는 마땅한 인수자가 없다. 인수되지 않으면 그대로 파산절차를 밟게 되고 그동한 수혈해준 산업은행 등이 지급한 혈세를 회수할 방법이 없어진다. 국익 차원에서 진행되는 M&A인 만큼 빠른 기업결함 승인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관련 승인에서도 늦장 대응을 하고 있다. 이날 조 위원장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건 심사에 대해 "기업이 제출한 시정 조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유럽연합(EU)도 조만간 공식 심사 절차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저희도 막바지 단계로 연내 심사할 수 있도록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 "공정위 조건부 승인 추진은 외국계 항공사 배만 불리는 것"


다행히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절차의 구체적 시기까지 공개됐지만 '조건부'로 나는 점은 대한항공 입장에서 반가울리 없다. 대한항공은 이같은 조건부 승인 추진이 항공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운수권이란 타국과 항공회담을 통해 항공기 운항 횟수를 정해 그 안에서 운항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슬롯이란 항공사가 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이다. 실제 통합항공사의 운수권이나 슬롯을 제한하면 외국 항공사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장거리 노선의 경우 대형기만 운항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흡수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은 중소형 기종만 보유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비용항공사들이 대형 기종을 구매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티웨이항공이 A330-300 임대차 계약을 완료한 상태로, 2022년 2월부터 5월까지 총 3대를 도입해 운행할 계획이지만 유럽, 미주 등은 가지 못하는 항공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항공사의 운수권이나 슬롯을 제한할 경우 고스란히 외국 항공사에게 노선을 빼앗길 수 있다는 얘기다.

항공 자유화 노선의 경우 어느 누구나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데, 통합항공사의 운수권을 제한하면 외국항공사의 운항만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비자유화 노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결국 외국 항공사들이 그 동안 운항하지 않았던 운수권을 토대로 새롭게 운항을 시작해, 외국 항공사들의 점유율만 올라가는 결과로 귀결된다. 결국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고, 또 다른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항공산업 생태계를 복원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며 만약 통합 항공사의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는 조건부 승인이 된다면, 결국 외국 항공사 배만 불리게 돼 합병의 취지를 퇴색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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