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이미지. 사진=국립한글박물관
'말모이' 이미지. 사진=국립한글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신청한 '내방가사',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가 국내 후보로 선정되었다고 24일 밝혔다. 최종 등재는 2027년 상반기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UNESCO Executive Board)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내방가사'가 국내후보로 선정된 것은 18~20세기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여성 고유의 문학을 만들어 냈다는 점 때문이다. 가사 앞에 내방(內房)이라고 붙인 까닭은 '내방가사'의 소재와 배경, 작가들의 집필 공간이 모두 집 안이었기 때문이다. 등재 신청한 567건의 작품은 1794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창작된 것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삶의 애환부터 사회 비판까지 기존 역사 기록에서 충분히 조명하지 못했던 여성의 증언이 담겨있다. 내방의 '안방의 작가들'은 자기 존재와 삶에 대한 적극적인 성찰을 글로 남긴 존재들로 '내방가사'를 창작함으로써 자신들의 생각과 일상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내방가사'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주도의 문자 보급을 입증하는 기록물이다. 역사적으로 문자 보급은 대부분 국가나 종교, 지식인 계층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18~19세기 여성들은 함께, 때론 혼자 '내방가사'를 베껴 쓰거나, 낭송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문자 습득과 가사의 창작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과정이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됨에 따라 여성들은 가사로 소통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향유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향유 문화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문자를 익히도록 견인했고, 이로써 다른 여성의 성장을 견인하기도 했다. 등재 신청한 '내방가사'는 권력의 지원 없이도 여성이 문자로 소통하며 지식과 문화를 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들이다.

'내방가사'에 이어 국내후보로 선정된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는 일제강점기 모국어를 보존하고 민족 정체성 확립의 노력을 증언하는 대표 한글문유산이다. 이번 등재 신청은 한글학회가 주도하고 국립한글박물관이 협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말모이원고' 1책과 한글학회, 독립기념관, 동숭학술재단에서 소장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 18책으로 등재 신청 기록물을 구성했다. 

'말모이 원고'는 1910~1912년 경, 주시경 선생과 제자 김두봉 등이 집필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국어사전 원고로 'ㄱ~갈쥭'까지 수록된 1권만 전해지고 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근대 국어학의 연구의 결실을 보여주는 원고로 조선어학회에서 집필하였으며 1930년대부터 1942년까지 작성한 원고만을 한정하여 등재를 신청하였다.

'말모이'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자국어 정리를 통하여 한자에서 한글로의 언어생활 전환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19세기 말 개항을 거치며 근대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야 했던 조선 사회에서, 한자 중심의 문자생활로는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수용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지식인들은 한글을 기반으로 한 통일된 국어 체계의 필요성을 자각했고, 우리말의 표기·문법·어휘를 정비하기 위한 근대식 사전 편찬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주시경 선생과 제자들은 우리말을 스스로 정리하고 한글 중심의 언어생활을 확립하고자 한국 최초의 근대 국어사전 초고인 '말모이' 원고를 집필했다. '말모이'가 축적한 원칙과 정신은 1929년 이후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조선말 큰사전' 편찬으로 이어졌다. 두 기록물은 한자 중심 사회에서 한글 중심 사회로 전환하던 격변기, 조선인이 주체적으로 우리말을 지키고 정비하고자 했던 노력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로서 한국어학 근대화의 핵심이자 민족의 언어 정체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내방가사와 근대 한국어사전 원고가 세계기록유산 국내후보로 선정됨으로써 K-컬쳐의 원류인 한글문화유산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립한글박물관 강정원 관장은 "내방가사와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의 체계적 연구·보존을 통해 우리말과 글이 지닌 문화적 잠재력을 한층 더 확장하고, 한글문화유산의 세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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