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 메리츠증권을 비롯한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잇따라 전산 장애를 일으키며 투자자들의 불편을 야기했다. 지난달 3~4일 키움증권이 이틀 연속 주문 처리 지연 사태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는 메리츠증권에서 미국 주식 거래 과정 중 전산장애가 일어났다. 투자자들은 커뮤니티 등에서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국내 증권사의 전산 장애는 몇 년 새 가파르게 상승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전산장애 발생 건수는 2020년 60건에서 2021년 84건, 2022년 76건, 2023년 98건, 2024년 94건으로 5년간 무려 60%나 증가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에도 미래에셋증권의 주식 체결 조회 지연, 한국투자증권의 나스닥 종목 주문 차질, 토스증권의 해외 종목 정보 조회 오류까지 '전산 대란'이 연달아 발생했다.
이런 전산 장애의 대부분은 증권사들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과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에서 발생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가장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1분1초를 다투는 증시 특성 상 잠깐의 시스템 오류도 투자자들에겐 거대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국내 증시 투자자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7637만 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1%나 급증한 수치다.
그간 증권사들은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과 시장 점유를 위해 고객 유치에 공격적으로 나서 왔다. 저마다 수수료 무료 정책은 물론 다양한 MTS, HTS 서비스 강화를 단행했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증권사들의 전산 인프라는 그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당국 차원에서 전산 장애와 관련한 명확한 피해보상 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전산 장애에 따른 피해 보상 규정이 명확히 마련되어 있지 않아 증권사들의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태다.
최근 5년간 금감원이 전산 장애로 특정 조치를 취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신증권에는 '피해 보상 권고', 신한투자증권에는 '과태료 8000만 원 부과'에 그쳤다. 전산장애로 인한 누적 피해액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이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외치는 당국의 행보와도 사뭇 어긋나는 지점이다.
증권사들은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수익을 위한 고객 유치에 치중해 온 것은 아닐까. 키움증권은 전산 장애의 이유로 "주문 폭주로 인한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키움증권은 자사 멤버십 현금 리워드를 위해 무손실 ETF로 거래량을 채우는 행태를 방조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메리츠증권의 이번 전산 장애 역시 무료 수수료 정책을 도입하면서 트래픽이 급증한 것이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겠다는 한국 자본시장의 야심은 전산 장애는 물론이고 느슨한 보상 절차 앞에 무색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시스템 안정성이라는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 불만을 토로하는 형국이다.
사과와 단편적인 보상의 반복으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증권사들의 경각심이 절실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