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공식 지정하면서 산업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해당 조치는 지난 1월 발표됐으며, 15일부터 공식 발효된다.
민감국가 지정은 미국이 자국 안보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국가를 대상으로 기술 접근과 연구 협력 등을 엄격히 제한하는 제도로, 한국이 올해 처음 포함되며 지정 국가는 기존 25개국에서 26개국으로 확대됐다.
민감국가 지정 이후 한국 국적 연구자들은 DOE 산하 연구소나 관련 시설에서 근무하거나 공동 연구에 참여할 때 까다로운 신원 검증과 사전 승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미국 측은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은 지속된다"고 밝혔지만, 산업계에서는 실질적인 협력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반도체, 원자력 등 미국 정부가 전략기술로 분류한 분야에서는 공동 연구 및 인력 교류 등 주요 협력 채널에 타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대표 기술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활발한 연구개발 및 기술 제휴를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미국 현지 연구소 및 글로벌 파트너와 협력하며 다수의 국가 전략과제 및 글로벌 컨소시엄에 참여 중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차세대 반도체, 로보틱스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인디애나주 퍼듀대학교 리서치 파크에 약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고대역폭 메모리(HBM) 칩 패키징 공장 및 연구개발 센터를 건설 중이다.
그러나 미국이 보안상의 이유로 첨단 기술 접근을 통제할 경우, 반도체·배터리·AI·전기차 등 한국 핵심 산업의 글로벌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민감국가 지정은 현재 수주를 추진 중인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총 24조원 규모에 달하는 이 사업은 한국수력원자력을 주축으로 한 두산에너빌리티·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지난해 7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현재 계약 막바지 단계에 있다. 당초 3월 계약 체결을 목표로 했으나 세부 협상 지연으로 일정이 다소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확한 기술 제재가 아니더라도 미국과의 협력 기반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만으로도 글로벌 수주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체코 정부가 입찰 평가에서 '국가 신뢰도'를 중시하는 만큼 민감국가 지정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관련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적 채널을 총동원하고 있다.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5일 공동 발표를 통해 "지난달 20일 미 에너지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절차에 따라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기로 협의했다"며 "관계부처가 함께 국장급 실무 협의 등 적극적인 교섭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