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는 스스로 냉각을 조절하고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준다. 인덕션은 물이 넘치지 않도록 스스로 화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됐으며, 로봇청소기는 바닥 유형을 분석해 맞춤형 청소 방식을 제안한다. 가전기기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할 일이 점점 줄어든다.

삼성전자가 개최한 '웰컴 투 비스포크 AI' 행사에선 이 같은 흐름이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줬다. 가전제품과 스마트폰에 연결된 화면이 집 안의 모든 기기를 통합하고 일상을 조율하는 장면은 '기술이 사용자를 돕는 것'을 넘어 '기술이 생활을 설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변화는 특정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LG·샤오미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가전 브랜드는 물론 구글·애플 같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까지 '초연결 생태계' 구축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단순한 자동화 기능을 넘어, 기기 간 유기적인 협업과 데이터 기반 예측 기능이 차세대 생활가전의 기준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초연결을 지향하는 스마트홈 기술은 분명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이 편리함은 기술이 우리 삶을 조용히 통제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자가 존재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판옵티콘(Panonticon)'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스마트홈은 이러한 구조와 닮았다. 편리함을 누리는 동시에 자신의 행동과 생활패턴은 기기에 의해 감지되고 분석되는 환경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 정보는 기기 혹은 서버에 '사용자 경험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수집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AI 스피커나 로봇청소기가 자신을 감시한다고 느끼진 않는다. 지난 2022년에 발생했던 '아파트 월패드 해킹' 사건이나 '웹캠·로봇청소기 해킹'과 같은 보안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진 말이다. 실제로 과거 노트북 카메라에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거실 홈 카메라 설치를 망설이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이미 기술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환경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감시조차 느끼기 어려운 시대다. 스마트홈은 더 이상 사용자의 의도나 결정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맞춤형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편리함으로 포장하며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통제 사회에 대한 후기(Postscript on the Societies of Control)'의 저자 질 들뢰즈는 이러한 흐름을 '통제사회'라고 불렀다. 들뢰즈에 따르면 푸코 이후의 사회는 더 이상 감시조차 필요하지 않다. 그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더 이상 고유한 개체로 존재하지 않고, 표본·데이터·시장·정보 등으로 쪼개진 존재(Dividual)가 됐다고 봤다. 그는 "통제사회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서명이나 번호가 아닌 '코드'다"라고 언급했다. 오늘날 이 코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됐고, 기술은 그 흐름을 통해 사람을 분류하고 예측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다만 들뢰즈는 이 변화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이분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새로운 감시구조 안에서 저항하거나 사유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가 이 같은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기술은 도구를 넘어 삶을 조직하는 질서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편리함은 분명한 진보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과연 자유로운 삶일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가 편리함을 선택한 걸까, 아니면 편리함이 선택의 구조를 바꾼 것일까. 기술은 삶을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질문은 오히려 복잡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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