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모주 신화'가 저물면서 상장 기업 밸류에이션이 점차 보수화되고 있다.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기업공개(IPO) 시 밸류에이션이 저평가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시장에선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이 눈길을 끄는 모양새다. 반면 스팩 상장조차도 낙관적이진 않다는 목소리도 따라붙는다.
IPO 수요예측을 진행할 때 높은 밸류에이션을 책정해 상장 후에도 높은 주가를 기록하는 현상이 점점 줄어들면서 공모주 시장은 옥석가리기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펀더멘탈과 성장성을 더 면밀하게 따지기 시작하면서 밸류에이션 책정은 점점 보수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분위기다. 게다가 최근 폭락장을 지나오며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져 기업들은 밸류에이션 책정이 보수화를 넘어 저평가될 수 있다는 우려에 휩싸였다.
이에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과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은 스팩 상장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팩은 기업의 인수합병을 위해 설립하는 기업인수목적회사다. 증권사는 먼저 청약을 받고 증거금을 모아 스팩을 상장시키고, 비상장 기업과 합병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우회상장을 주관한다. 직상장 요건을 맞추기 어려운 기업들은 스팩을 이용한 우회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에 역량과 잠재력은 있지만 증시에 상장하기 어려운 기업들에게 IPO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된다. 상장 후 채권 발행이나 유상증자 등 주관사와 돈독한 전후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앞서 스팩 합병은 존속합병 방식만 가능했으나, 지난 2022년 소멸합병 방식이 가능해지면서 증권사들의 스팩 상장 분야에 숨통이 트였다고 평가된다.
최근 증권사들의 스팩 합병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대신증권의 기업인수목적회사인 대신밸런스제18호기업인수목적회사는 지난달 말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대신증권은 현재까지 대신밸런스스팩회사 1~12호를 합병해서 상장하는 것에 전부 성공했다. 합병 기업을 찾지 못해 상장폐지된 경우는 지난 2010년 스팩 제도가 처음 출범했을 때 내놓았던 대신증권그로쓰알파와 대신밸런스4호스팩 뿐이다. 대신증권은 이어 대신밸런스제19호스팩도 내세우며 스팩 실적에 대한 의지를 내보였다.
키움증권도 스팩 합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키움증권은 스팩 딜을 담당하는 부서를 중기특화총괄팀에서 기업금융부로 옮기고 주식발행시장(ECM) 부문 제고에 힘 쓰고 있다고 파악된다.
키움증권은 현재 키움제6호스팩과 키움제7호스팩의 합병 상장 딜을 추진하고 있다. 키움증권의 이번 스팩 딜이 성공하면 9년만에 스팩 상장 트랙레코드를 쌓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팩 상장에 있어 업계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은 하나증권이다.
하나증권은 지난 2013년 선데이토즈 스팩 합병을 시작으로 꾸준히 실적을 내왔다. 스팩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스팩 합병에선 우수한 성적을 이어왔다. 스팩 제도가 도입된 이래 하나증권의 스팩 합병 성사는 18건으로 증권사들 중 1위에 올라있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스팩 상장을 해온 시간이 길고 경험도 많다"며 "계속 내온 성과대로 꾸준히 잘 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반면 IPO를 대체해 스팩 시장이 증권사들의 먹거리 대안이 될 것이라는 예측에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증시 입성이 순탄치 않은 기업들에겐 IPO의 대안일 수 있으나, 당초 작은 기업들은 상장 시도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며 IPO를 진행해 직상장이 가능한 기업이라면 직상장을 하는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스팩 성과가 주식발행시장(ECM) 시장에서 두드러지는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오히려 당장의 수익보다는 상장 기업과의 지속적인 딜 소싱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합병할 기업을 찾지 못해 스팩을 청산해도 큰 손해가 없어 증권사들에게 유리하다는 시선에도 반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스팩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당연히 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며 "타격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스팩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합병이 무산되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 공모주 시장의 밸류에이션 보수화가 스팩 주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관해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어쨌든 스팩도 주식회사기때문에 합병하려는 회사와 스팩 주주들의 의견이 맞지 않으면 주주들도 반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