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PLAVE)' 단체 사진. 사진 = 플레이브 공식 X(트위터) 계정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PLAVE)' 단체 사진. 사진 = 플레이브 공식 X(트위터) 계정

플레이브(PLAVE), 이세계아이돌, 향아치 등 '버추얼(Virtual) 캐릭터'를 활용한 컨텐츠 창작자들이 새로운 문화 흐름을 이끌고 있다. 캐릭터가 가진 개성에 뛰어난 기술과 인간성을 더한 점이 매력이다.

최근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플레이브가 지난 2월 26일 발매한 미니 2집 'ASTERUM: 134-1'은 발매 후 일주일 만에 56만장이 팔렸고, 지난 9일에는 MBC TV <쇼! 음악중심>에서 버추얼 아이돌 그룹 최초로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다. 이날 플레이브와 함께 1위 후보에 오른 가수들은 르세라핌(LE SSERAFIM), 비비(BIBI)였다.

플레이브는 예준, 노아, 밤비, 은호, 하민으로 이루어진 2023년 데뷔한 5인조 버추얼 보이그룹이다. 버추얼 아이돌이란 그림, 애니메이션, 컴퓨터 그래픽스 등을 활용해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활동하는 가수를 뜻한다. 플레이브 소속사 블래스트는 언리얼 엔진(3D 그래픽 제작 프로그램)과 모션 캡처(사람의 동작을 녹화해 후가공하는 것), 애니메이팅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사실적인 그래픽을 제작했다.

플레이브는 멤버 전원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안무 창작 등에 참여하는 실력파 자체 제작 아이돌이기도 하다. 물론 각 캐릭터를 담당하는 실제 사람, 이른바 '본체'도 따로 있지만 철저히 기밀에 부쳤다. 블래스트는 지난해 팬카페 공지로 플레이브의 '개인정보(본체)' 언급 시 법적으로 조치하겠다 밝혔으며, 팬들도 나서서 관련 글을 신고하고 자정작용을 하려 노력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버추얼 아이돌, 버추얼 유튜버(버튜버) 등 '버추얼 컨텐츠 창작자'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는 중이다. 2016년 일본에서는 버튜버 키즈나 아이가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버추얼 유튜버'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를 버추얼 유튜버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시초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우리나라도 지난 2021년 버추얼 아이돌 그룹 Re:Revolution(前 레볼루션 하트), 이세계아이돌이 데뷔했다. 팬덤 규모도 여느 아이돌이나 유튜버 못지 않다. 게임 버튜버 맥큐뭅은 27일 기준 유튜브 채널 구독자 121만명, 버튜버 대월향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수가 101만명에 달한다.

2023년 진행된 서울역사박물관과 버추얼 유튜버 '향아치'의 협업 방송 홍보 이미지. 사진 = 서울역사박물관 공식 인스타그램
2023년 진행된 서울역사박물관과 버추얼 유튜버 '향아치'의 협업 방송 홍보 이미지. 사진 = 서울역사박물관 공식 인스타그램

강한 캐릭터성과 독특한 전문 분야로 시청자를 모은 버튜버도 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14만9000여명을 보유한 향아치는 광무 5년(1901년)에 살던 대한제국 관리(칙임관 2등 외부협판, 현대 기준 외교부 차관과 유사한 관직)였으나 경운궁 뒤편의 빛나는 문을 통해 현대 한국으로 시간 여행을 했다는 설정이다.

그는 방송 중 실시간으로 조선왕조실록 오역을 짚어내거나 2023년 12월 트위치 대한민국 사업 철수가 결정된 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제목으로 상복을 입고 출연하는 등 컨셉과 각종 논문에 기반한 역사 지식을 적절히 조합한 재치 있는 방송으로 여러 차례 화제가 됐다. 흔치 않은 개성과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서울역사박물관 '한양 여성 문밖을 나서다' 기획과 공식 협업 방송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버추얼 컨텐츠 창작자의 매력은 단지 '가상현실'과 '아바타'에만 있는 게 아니다. 팬들은 설정된 캐릭터가 지닌 특성과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의 인간적 매력을 모두 호감 요소로 꼽는다.

플레이브 팬 A씨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플레이브를 처음 접했고, 관련 영상들을 보며 빠져들었다"고 팬이 된 계기를 밝혔다. A씨는 "보통 아이돌이나 배우의 팬이었던 적은 없지만 '버추얼'이라는 요소 외에는 플레이브가 다른 아이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며 "오히려 팬덤 내에는 일반 아이돌을 파던 사람들도 꽤 많다"고 덧붙였다.

무림인 컨셉으로 활동 중인 버튜버 남궁혁의 팬 B씨는 "이전에도 보컬로이드 등 가상 캐릭터나 관련 컨텐츠를 좋아했었다"며 "방송 스타일이나, 실제로도 자기관리를 잘하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B씨는 "캐릭터 얼굴로 보이니까 본체를 신경 쓰지 않게 된다"면서도 "(그 안의 사람이) 성실한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버튜버 앵보를 좋아하는 D씨는 "버추얼이라는 특성에 끌릴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 사람이 들어 있기 때문에 (버추얼 시장은) 개개인의 입담, 재치,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현재 대중들은 과거에 비해 가상 관련 개념을 게임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늘었다"며 "초창기 버추얼 아이돌은 대중들이 관련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이버 가수 아담(1998년 데뷔)은 기술적 구현에 한계가 있어 캐릭터와 뒤의 사람 사이 이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며 "현재는 캐릭터 뒤 실제 아이돌들이 연결해서 직접 활동할 수 있는 기술적 요소가 많이 발전했고, (컨텐츠도) 훨씬 몰입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버추얼 컨텐츠 창작자들의 인기가 메타버스(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 정착을 오히려 돕는다는 견해를 보였다. 정 평론가는 "메타버스 개념이 사람들에게 정착되려면 그 안에 채워지는 컨텐츠가 더 중요하다"며 "메타버스 때문에 가상 아이돌이 주목받는 게 아니라 가상 아이돌 등이 정착되면 메타버스가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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