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우리가 죽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은 그저 몇 번 일어난다. 정말로 작은 수의 몇 번.

어린 날의 어느 오후를 당신은 몇 번이나 더 떠올리게 될까? 너무 깊이 당신 존재의 일부여서, 그걸 빼 놓고는 당신의 인생을 인식할 수 없을 어느 오후를. 아마 네댓 번 정도 더일까? 아마 그 정도도 안 될 것이다. 앞으로 몇 번 더 당신은 보름달이 뜨는 것 보게 될까? 아마도 스무 번? 그러나 그건 마치 무한할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 옮김)

2017년 발표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솔로 앨범 [async] 중의 한 곡 'fullmoon'은 한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어, 여러 언어로 이 내레이션의 부분 부분을 되풀이하는 음성들과 피아노의 연주로 이루어져 있다. 2009년의 [out of noise] 이후 [async]까지는 8년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이는 2014년 인두암의 발병과 치료 및 요양의 기간을 거치며 이 앨범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작을 준비, 진행하던 중 암 진단을 받게 되면서 즉각 중단했던 프로젝트를, 치료 과정을 거친 후 이전의 컨셉트를 버리고 전면적으로 재작업한 이 앨범의 폐기된 당초의 컨셉트는 '가공의 영화 사운드트랙'이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solari' 같은 곡에서 그 편린을 볼 수 있다.

바흐의 코랄을 재해석한 이 곡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솔라리스>에서 촉발된 것임은 제목에서도 확연한데, 에두아르드 아르테미예프가 만든 사운드 트랙에는 물론 바흐의 코랄이 메인 테마로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앨범의 발매 직후에는 영상작가 다카타니 시로와 함께 'async 설치음악전'을 개최했는데, 이 작품은 2018년 여름에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 특별전: LIFE, L I F E'의 일부로 국내의 관객에게도 소개된 바 있다. 전시회에 게시되었던 글의 일부를 인용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를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로 표현할 것.

-바흐의 코랄(Chorale)을 옅은 안개가 낀 음색으로 바꿔볼 것.

마치 규칙이 없는 듯한 안개의 움직임 속에서 엄격한 논리가 모습을 드러내듯.

-사물(모노)의 소리를 수집할 것.

-환경음을 수집할 것. 빗소리, 폐허 소리, 혼잡한 소리, 시장 소리.

-하나의 템포에 모두가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소리/파트가 고유의 템포를 가진 음악을 만들어볼 것.

또한 앨범 발매에 이어, 투병 이후의 일상과 작업, 그리고 인터뷰를 담은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와,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열린 앨범 [async] 발매 기념 콘서트를 기록한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 이렇게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스티븐 노무라 시블 감독)가 발표되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fullmoon의 내레이션은 자신의 문장을 낭독하는 작가 폴 보울스의 목소리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랑(원제는 The Sheltering Sky)>의 한 장면의 음성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 영화는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일본인 최초의 아카데미상을 안겨 준 <마지막 황제> 이후 두 번째로 그가 음악을 담당한 베르톨루치 작품이었다. 또 이번 회의 제목으로 삼은 문장은 작년 여름 한국어판이 출간된 사카모토 류이치(1952.01.17.-2023.03.28)의 유고집의 제목으로, 이 책은 2022년 7월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2023년 2월까지 문예지 신초에 연재한 그의 에세이를 수록한 것이다.

박창학(작사가,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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