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낙오된 주인공은 구조대가 오기까지 2년여의 세월을 혼자 생존해낸다. 감자 농사를 지어 식량으로 삼는다는 설정을 비롯해서 에너지나 통신 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높아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은근슬쩍 넘어간 부분이 있는데, 바로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현재의 우주과학 기술로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려면 약 6개월이 걸린다. 다시 말해서 6개월동안 우주선 안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간에 보급받을 곳이 없으므로 지구에서 출발할 때 식량이며 식수며 그밖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다 싣고 떠나야 하지만, 이런 보급보다도 더 어려운 문제는 바로 심리적인 부분이다. 과연 6개월 동안 좁은 우주선 안에서 동료 승무원들과 내내 원만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이렇듯 장거리 우주여행을 견디는 문제를 SF에서는 대개 인공동면으로 해결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목성으로 가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의 우주인들은 대부분 인공동면 상태이다. 또 '인터스텔라'에도 등장인물들이 인공동면에 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 밖에도 '패신저스', '팬도럼' 등등 인간의 인공동면을 묘사한 작품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인간의 인공동면은 과연 가능한가?

동면에 드는 동물들은 식량이 부족한 겨울 동안 수면을 취함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체온도 낮아지고 맥박도 느려진다. 인간도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장거리 우주여행에서 심리적인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식량이나 기타 자원도 덜 소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까지 인공동면 기술도 개발되지 않았다.

사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 인간의 인공동면 전망은 어두운 편이 아니다. 곰처럼 인간과 비슷한 포유류 중에도 동면을 하는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건은 인체 실험이다. 아무리 동물실험을 많이 해도 결국 인간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하는 절차를 건너뛸 수는 없다. 그런데 만약 실험 과정에서 동면에 들어간 사람이 자칫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사고가 일어난다면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이는 더 이상 과학기술의 차원이 아닌 사회윤리적인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인공동면 기술은 넓은 의미에서 트랜스휴먼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는 사이보그 기술 못지않게, 인간 신체를 인공동면에 적합하도록 변화시키는 기술도 중대한 윤리적 문제와 얽혀 있다. 과연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진화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윤리적 상상력인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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