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는 일본의 국민 괴수라고 할 만한 거대 괴물이다. 1954년에 처음 흑백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속편이 잇달아 나오면서 오히려 악당 괴수를 퇴치하는 수호신 같은 캐릭터로 변화했다. 핵폭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인들이 영화 속 고지라의 탄생 배경, 즉 핵폭발로 인해 잠을 깬 괴수라는 설정을 그들의 피해 의식을 대변하는 물리적 총체로 받아들인 느낌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국민 괴수라고 할 만한 존재가 있을까? 언뜻 떠오르는 게 ‘용가리’이다. '불가사리'도 있지만 거대 괴수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다.

지금 '용가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999년에 심형래 감독이 내놓은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용가리가 처음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1967년 영화 '대괴수 용가리'이다. 아쉬운 것은 이 용가리는 사실 '고지라'의 아류라는 것이다. 실제로 1967년 영화도 당시에 일본 '고지라'의 특수효과 팀이 와서 도운 것이다.

아무튼 '용가리'라는 말은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했다. 사실 ‘용가리’의 어원은 '용갈이', 혹은 한자로 '용경(龍耕)', 즉 용이 갈아놓은 흔적이라는 의미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예로부터 우리가 겨울에 이따금 목격하곤 하는 자연 현상을 일컫는 말이었다.

영하 10도 안팎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 강이나 호수도 꽁꽁 얼어붙는다. 그런데 이런 빙판들이 밤사이에 부서져서 다음날 보면 삐죽삐죽 솟아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에는 마치 거대한 공룡이 지나간 것처럼 솟아 있는 얼음들이 일정한 궤적을 따라 주욱 이어져 있기도 하다. 이것은 밤과 낮의 기온 차에 따라 얼음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부피가 변화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계면을 따라 얼음이 약한 곳이 부서져 갈라져 버리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걸 보고 '용이 갈아엎었다, 도깨비가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19세기의 민속해설서 '동국세시기'에 충남 홍성의 용갈이 이야기가 실려 있고 그 밖에도 경북 함창, 경남 밀양, 황해도 연안 등지에도 이야기가 전해 온다. 물론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아무튼 '용가리'는 영화 때문에 그 모습이 고지라 같은 공룡 비슷하게 굳어져 버렸는데, 뭔가 더 새롭고 독창적인 모양으로 재탄생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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