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진 = Unsplash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촬영 = Joshua Olsen / 사진 = Unsplash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

마치 사랑의 명절과 같은 느낌, '화이트 데이'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으실 테고요. 싱글이던 제 예전을 돌이켜보면 친한 친구들과 이러한 사랑의 시즌이 돌아오면 "술 마시러 가자!" 일부러 약속을 잡았던 기억도 납니다. 시끄럽고 북적북적한 펍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우리 만나지 말자, 그런 농담을 하던 추억도 떠오르고요.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이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지만, 사랑 참 좋지요! 사랑은 분명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거든요. 이러한 이유로 수많은 세월 인류는 사랑할 사람을 찾았고, 사랑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서양 음악사를 빛낸 위대한 음악가들도 사랑을 했습니다. 예술가들의 사랑이 보통의 사람들과 달랐을 것도 같지만, 사랑의 이름 앞에서는 모두 같은 모습이었어요. 어쩌면 그들의 유명세로 인해 그들의 사랑이 보통 사람들의 사랑보다 더 과장되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사랑 앞에서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일 뿐이니까요. 그들도 연인을 그리워했고, 아꼈고요. 그러다 마음이 변하기도 했고요. 배신과 증오의 감정이 싸움으로 치달은 경우도 있었고요. 오늘날 우리들이 하는 사랑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더 사랑이라는 신비한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또 불륜을 통해 아내와 자식들에게 상처를 준 스타라빈스키나 프로코피예프, 드뷔시를 떠올리며 욕을 퍼붓기도 했었어요. 모니터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면서 말이죠. 저는 불륜을 저지른 쪽이 아닌, 상처받은 쪽에 감정 이입을 했으니까요. 사랑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우리를 울고 웃게 또 살게 하는 걸까요. 사랑에 빠져 행복했던 기억, 사랑에 실패해 고통스러웠던 기억 그럼에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클래식 음악계의 셀러브리티 루트비히 반 베토벤, 프란츠 리스트의 마지막 사랑 카롤리네가 쓴 유언장, 리하르트 바그너, 표트르 차이콥스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연애편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제가 음악가들에 대한 글을 쓰는 재미 중 하나는요. 실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들의 사랑 이야기를 소개한다는 목적으로,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또는 앞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어떤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껴보는 순간의 즐거움입니다. 친한 친구들의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과 같은 마음이랄까요. 독자 여러분께서도 그들의 사랑 편지를 읽어 내려가 보시면서, 한 번 이런 순간을 음미해보셨으면 합니다!

 

"당신의 사랑은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듭니다. 동시에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도 만들죠. 이제 나는 조용하게 남은 생을 당신과 지내고 싶어요. 우리의 사랑이 계속 이어진다면 함께할 수 있겠지요?"

 

-베토벤이 익명의 여인에게 쓴 편지로 '불멸의 연인에게' 중

해설

베토벤이 사망한 후 그의 책상 서랍에서 세 통의 편지가 발견됐다. 이 편지의 특이점은 수신자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과 우체국에서 바로 편지를 부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편지를 쓴 베토벤의 마음은 깊은 사랑을 고백하고 있지만, 그 상대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도덕적인 가치관이 상당히 높았던 베토벤의 성품으로 추정해볼 때, 이 편지의 주인공은 가정이 있었던 기혼 여성이나 연인이 있는 미혼 여성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남편 프란츠 리스트에게 전 재산을 상속한다. 남편은 길고 깊고 감사해야 할 사랑을 내게 주었다. 교회에 나를 바치는 경건한 가톨릭 신도로서 남편이 허락한다면 로마에 묻히고 싶다. 카롤리네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연인 카롤리네의 유언장 중.

 

해설

프란츠 리스트는 젊은 시절부터 수많은 여성들과 연애를 했다. 가정이 있는 기혼 여성들과도 연애를 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열애는 훗날 리하르트 바그너의 마지막 아내가 되는 코지마 바그너의 어머니인 마리 다구 부인과의 열애다. 그러나 리스트는 인생 후반부에 역시 기혼자였던 까롤리네 공주와 사랑을 시작한다. 까롤리네는 남편과 별거 중이던 부유한 공주로 엄청난 재산을 소유했던 인물이다. 이혼 과정에서 자신의 재산을 남편 측에게 과다하게 넘길 위기에 처했고, 혼인 무효 소송을 진행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까롤리네가 위자료로 그의 남편에게 재산을 줄 경우, 당시 러시아의 국경이 바뀔 정도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까롤리네와 리스트는 사랑의 도피처에서 몇 해를 함께 살았다. 그리고 헤어졌다. 까롤리네는 리스트에게 성직자의 길을 권유했고, 까롤리네 또한 수녀 같은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가 쓴 유언장의 서명은 지금까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이야기다.

 

"좋은 아침입니다 당신의 천사를 위해 기도합니다. 나의 마음을 의심할 수 없어요. 사랑, 사랑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제 어린아이 같았던 나의 행동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정원에서 당신을 마주칠 수 있겠지요. 아주 잠시라도 당신이 혼자 있는 모습을 발견하길 고대합니다."

 

-바그너가 마틸데에게 보낸 편지 중.

해설

리하르트 바그너는 전형적인 바람둥이였다. 바그너는 자신을 경제적으로 후원해주던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데와 바람을 피웠다. 훗날 바그너는 두 번째 아내이자 프란츠 리스트와 마리 다구 사이에서 낳은 딸, 코지마 리스트에게 마틸데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속마음을 들려주었다. 경악스러운 일은 바그너, 마틸데는 각자의 배우자끼리 알던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피웠다는 점. 결국 바그너와 마틸테의 위험한 사랑은 발각되었지만,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는 결말을 맞았다.

 

"그 누구보다 값진 단 한 사람, 당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신의 장난이 더 이상 길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까운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 행복할 거예요."

 

- 라흐마니노프가 결혼 직전 아내 나탈리아에게 보낸 편지 중

 

해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고모의 딸과 결혼했다. 이 결혼은 당시 러시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러시아 정교회의 법에도 어긋났다. 그러나 둘의 사랑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라흐마니노프의 고모의 노력으로 황제의 특별 허가를 받아 궁전 안의 작은 예배당에서 결혼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평생 해로하면서 서로의 삶을 사랑해주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 천천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제 내 마음을 고백해 볼까 해. 내가 그동안 이 사랑을 숨기느라 얼마나 멍청하게 굴었는지 넌 상상하지도 못할 거야."

 

-차이콥스키가 사랑에 빠진 것을 친동생에게 고백한 편지 중

 

해설

표트르 차이콥스키는 한 차례 결혼을 했지만, 바로 아내와 헤어졌다. 남성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수많은 편지에 기록했는데, 그 중에는 조카, 동창생, 제자, 동료 연주자 등이 그의 사랑을 받았던 대상이다. 이러한 문제로 차이콥스키가 사형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현재 차이콥스키의 후손 측은 그러한 일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저 차이콥스키가 남긴 편지들만이 진실을 전하게 됐다.

 

참고 도서 '아주 사적인 예술' (추명희, 정은주 공저, 42미디어콘텐츠 펴냄)

|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알고 보면 흥미로운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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