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인 국회는 물론이고 정부도 항상 법령의 헌법 합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도서정가제는 2000년 첫 토론에서부터 필자가 제기했던 대로 위헌의 소지가 있었다. 나는 지금 제기되는 도서정가제의 문제가 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제도에 대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도서정가제’라는 ‘제도’를 ‘도서유통질서에 관한 법률’로 잘못 이해함으로써 입법 재량을 일탈한데서 야기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진=픽사베이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4년 11월부터 시행되었다. 주로 대형 출판사들이 지역서점 보호와 신인작가들들의 출판 접근성 제고, 소비자들의 양질의 도서 접근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출판문화 진흥법 제22조의 개정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시행 5년이 지나서 평가한 결과는 애당초 주장했던 효과는 커녕 대형 출판사와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게만 유리한 제도라는 결과를 가져왔단. 이에 완반모 등이 주도한 20만명 국민청원 이후 정부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더라도 77.5%라는 절대 다수 국민들이 현행 도서정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헌법의 본질은 국가 구성원인 국민들의 근본적인 합의다. 비록 엄밀한 법적인 개념에 따라 답한 것은 아닐지라도 정부가 시행하는 제도에 대해 77.5%라는 절대 다수 국민들이 문제를 제기했다면 그것은 국가를 이루는 시민들이 합의이므로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한 헌법규범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화관광부와 일부 공공기관이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수 국민들의 뜻을 왜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도서정가제(재판매가격 유지제도. 이하 같다)는 생산자가 최종판매자(서점)와 소비자간의 가격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인정받은 권리이다. 도서정가제는 모든 상품과 용역 중에서 유일하게 인정받은 것으로서 지극히 예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헌법상 원리인 계약자유의 원칙을 침해하지 않도록 제한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도서정가제는 224개국가 중에서 극소수인 15개국만 선택하고 있고 그 중에서 8개국만이 법률로 규정하고 있고, 나머지7개국은 당사자간의 계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당사자들에게 위임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인정하고 있는 국가들 조차도 출간된지 12개월 정도 지난 구 간행물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도서정가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제도 자체가 지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과태료 등 행정제재도 소극적으로 운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와 독일도 시행하고 있으니 문화를 고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시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고 미국 등 소수 국가만이 정가제를 채택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주려는 의도가 있는 주장이다. 더구나 이런 분들은 구 간행물에 대해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는 사실, 정가제를 적용하는 물건은 책 뿐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이를 의도적으로 간과한다. 도서정가제가 지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차제에 도서정가제에 대한 제도의 존치부터 그 존재형식까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만약 현행 도서정가제 존치를 주장하거나 나아가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용감한 모험을 감행한다면 국민들의 근본적 합의에 근거한 헌법규범에 따른 헌법재판소의 위헌 법률 심판을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도서정가제를 단순히 도서유통질서를 규제하는 법률로 인식하고 있는 천박함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사람이 있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2020년 문화관광부와 박양우 장관의 야심찬 계획이 ‘사람’과 ‘문화’를 동시에 소외시키고야 말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책으로부터 사람을 소외’시켰듯이. 이는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배반이고 국민의 근본적 결단에 반하는 반민주적인 행위로 치부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거창한 구호이고 담론 만이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1987년6월과 2016년 겨울 촛불은 국민의 근본적인 결단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정부나 국가기관, 공무원은 반민주적임을 자임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거대한 반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교훈을 주었다.


도서정가제는 이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조 제6호에 규정된 「재판매가격유지 행위」에 근거하여 재설계되어야 한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헌법상 계약자유의 원칙과 평등권, 행복추구권,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의 존중,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 고양의 책무에 반할 위험이 있다. 대통령의 책무가 헌법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호임은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첫번째 조건임은 말할 것도 없으며 행정각부 장관과 소속 공무원은 당연히 이를 존중하는 것이 그 존재 근거다. 그럼에도 현행 도서정가제 입법화 과정과 작년 완전 도서정가제 논의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자의적으로 진행된 결과임이 명백하다.


제가 대표로 있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완반모)’은 일찌기 도서정가제가 헌법과 국민의 헌법적 결단에 반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 ‘간행물 정가의 표시 및 판매’ 규정 중 핵심조항들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국민청원 20만 서명 과정에서도 정부가 이에 반하여 미봉책으로 덮고자 한다면 결코 헌법과 국민으로부터 용납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수차례 직간접적으로 밝히고 장관과 1대1 토론도 제안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도서생태계 천만인 선언’을 통하여 위헌소지가 있는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함도 천명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도서정가제는 헌법 원칙과 공정거래법상 규정된 재판매가격유지제도를 근거로 한다. 우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사업자가 상품 또는 용역을 거래함에 있어서 거래상대방인 사업자 또는 그 다음 거래 단계별 사업자에 대하여 거래가격을 정하여 그 가격대로 판매 또는 제공할 것을 강제하거나 이를 위하여 규약 기타 구속 조건을 붙여 거래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9조 제1항에서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금지하면서 제2항 및 동 시행령 제43조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저작물로서 저작권법 제2조 소정의 저작물 중 출판된 저작물(전차출판물을 포함한다)에 한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미리 지정 받을 경우에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라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재판매가격유지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법률이므로 같은 법률인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으로 규정하면 얼마든지 회피 가능하다는 반헌법적인 사고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미 살펴 보았듯이 도서정가제는 헌법상 기본권과 경제질서의 기본원칙에 따라 그 내재적인 한계가 분명한 제도이다. 현행 도서정가제를 규정하고 있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는 헌법 제38조가 허용하는 입법의 한계를 넘어 헌법상 기본권과 경제 원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위험이 있어서 위헌소지가 높은 법률이다. 만약 관계부처가 현재와 같은 위헌적인 도서정가제의 유지, 강화를 시도한다면 장관 등의 탄핵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이를 견제해야 하고 견제할 것이라 믿는다.


일부 대형 출판사,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등이 자신들의 독점적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일부 기관과 연계하여 도서정가제 강화나 도서정가제 유지를 획책하거나 방조한다면 촛불 국민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모두 위헌적인 시도를 즉각 멈추고 공정거래법상 관련제도의 취지를 고려하여 합헌적인 제도로 재정비 해야 한다.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신인작가를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양질의 책을 싼 가격에 제공하며, 중소 출판사의 경영상태를 개선하고, 지역 서점도 보호할 수 있다’고 호도할 일이 아니다. 도서생태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지역 서점의 보호는 도서정가제가 아니라 출판사들의 공급률의 문제라는 점을 알고 있듯이 국가가 앞장서서 위헌적인 제도를 남용해서는 안된다. 국민인 도서 소비자들과 작가들, 중소출판사들이 더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도서정가제는 1911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에 의하여 정립되었고 우리나라에서 공정거래법상 재판매가격유지 규정으로 제도화되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헌법 정신이고 국민의 근본적인 결단이고 국가기관과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지엄한 명령이다.


완반모는 지난해 국민청원과 토론회 성과를 기반으로 올 3월부터 민주당 등 뜻있는 정당과 소속 국회의원, 대학생으로 구성된 이노베이더, 작가, 제4세대 서점인 인스타페이(InstaPay), 출판사 등 생태계 구성원을 중심으로 국회 토론회를 주최하고 ‘도서정가제 폐지를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용기있는 작가를 지원해서 헌법재판소로부터 관련 규정의 위헌결정을 이끌어 내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도서정가제 폐지가 오히려 헌법정신에 합치되고, 도서생태계 활성화와 생태계 구성원들의 이익에도 부합된다는 점을 들어 국민들과 생태계 구성원들을 설득할 것이다.

(배재광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 대표, law@cyb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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