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제공: 한국경제신문,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이미지 제공: 한국경제신문,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파리는 꿈과 낭만의 도시다. 많은 이들에게 아늑한 안식처와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국내에서 열렸던 앙드레 브라질리에, 라울 뒤피의 전시에 이어 파리와 사랑에 빠진 또 다른 프랑스 작가를 만날 수 있다. 그 주인공은 1933년 파리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미셸 들라크루아다. 그의 탄생 90년전을 맞아 기획된 대규모 전시가 미술애호가들에게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파리의 벨 에포크'라는 전시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1930년대 후반의 아름다운 시절을 다루고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에서 주인공 길(오언 윌슨)이 파리의 밤거리를 혼자 배회하다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들라크루아의 아크릴 페인팅은 ‘그 때 그 시절’의 향기를 머금은 파리로 안내한다. 연인들이 거니는 센강이나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트르, 바스티유 광장 등 주요 명소를 비롯해 에펠탑, 개선문, 노트르담 대성당 등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과 만날 수 있다. 욕심부리지 않는 삶을 추구한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대부분 영화 포스터보다 더 작은 사이즈로, 브라질리에나 뒤피처럼 대형 사이즈의 작품은 없지만 아담한 캔버스에 파리의 인상을 아기자기하게 수놓았다.

파리, 조감도, Paris, à vol d'oiseau, 2017 ©Michel Delacroix
파리, 조감도, Paris, à vol d'oiseau, 2017 ©Michel Delacroix

8개의 파트(정거장)로 구성된 전시는 ‘미드나잇 인 파리’로 시작해 작가의 최근작을 전시한 에필로그 ‘그리고 아직도’로 마무리된다. 전시장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겨울 이야기’와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눈 내리는 풍경이 전시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형형색색의 도시풍경만으로도 아름답지만 그 위에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이 더해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눈이 행복을 불러온다고 믿는 그의 상상력은 다소 감상적이지만 쉽게 소통 가능하다는 점에서 친화력이 있다. 무엇보다 파리지앵의 경험과 향수를 담은 작품이라 난해한 현대미술처럼 특별한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편안하다. 지그시 바라만 봐도 작가의 소박하고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이 오롯이 담겨 있는 그림에서 파리의 생활양식과 풍속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2019년 4월, 화재가 일어난 노트르담 대성당을 원래의 모습대로 수려하게 그린 최근작을 보면 문화유산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다.

파리, 눈 내리는 밤, Paris nuit de neige, 2023 ©Michel Delacroix
파리, 눈 내리는 밤, Paris nuit de neige, 2023 ©Michel Delacroix

파리의 고풍스러운 풍경만큼 이곳에서 일어나는 활기찬 삶도 중요하다. 호텔, 레스토랑, 노천카페 등이 가득 찬 파리의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들의 일상에 주목하면 그림을 보다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막대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남자들을 잘 보면 가로등을 켜거나 창문을 두드려서 잠을 깨워주는 일을 한다. 거리에서 꽃을 파는 수레 판매상이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 위해 전나무를 들고 분주하게 다니는 이들도 보인다. 특히 소년과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어린 시절의 작가와 그의 애견 퀸을 마치 작가의 서명처럼 그려 넣었다. 그림 속의 사람들을 이리저리 뒤쫓다 보면 어느새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들라크루아와 함께 떠나는 파리 산책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3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라 쿠폴 레스토랑, 몽파르나스 대로, La Coupole, Blvd du Montparnasse, 2017 ©Michel Delacroix.
라 쿠폴 레스토랑, 몽파르나스 대로, La Coupole, Blvd du Montparnasse, 2017 ©Michel Delacroix.
오 탄넨바움, Ô Tannenbaum, 2016 ©Michel Delacroix
오 탄넨바움, Ô Tannenbaum, 2016 ©Michel Delacr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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