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동차 내연기관 부품업체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강원도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업체 A사는 자동차용 오일필터, 연료필터, 에어클리너 등을 제조해 현대차, 기아 등 주요 자동차사들에게 납품한다. 1980년대에 설립돼 직원 수도 300명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의 지속적인 감소를 겪고 있다. 

현대차 등 자동차사들이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연구 및 투자는 대폭 줄이고, 전기차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개발 아이템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A사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법인까지 글로벌 구조조정을 지속하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11월 기준 연간 입사율은 5.5%(17명)인데 퇴사율은 11.8%(36명)에 이른다. 

이 회사 직원 B씨는 "이렇게 빨리 전기차 시장이 올 줄은 몰랐다. 우리 회사가 정말 좋은 회사였는데 전기차 때문에 개발 아이템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있던 수소 관련 아이템도 볼륨이 너무 작아서 제대로 개발된다고 해도 먹고 살수가 없다"며 "글로벌 공장 폐쇄에 구조조정을 계속하면서 위기감을 느껴 이직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된 전장 부품회사는 몇개 없어서 경력 입사 경쟁이 피를 튄다"고 했다. 

또  "내연기관 부품업체들이 얼마나 살아남을지 알 수 없다"며 "우리 회사의 1차 경쟁사도 부도가 나는 마당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깊은 우려감을 표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10곳 중 9곳 매출감소 호소...부도까지 현실화


전기차는 엔진 대신 전기 모터의 동력으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내연기관의 엔진과 변속 장치, 연료공급 장치 등의 부품은 쓸모가 없어진다. 내연기관 차량 부품 2만여개 중 65%인 1만3000여개는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한국자동차부품협회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업체 10중 9곳은 매출감소를 호소하고 있다. 매출이 40% 이상 급감한 곳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부도가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중소 자동차 부품 업체 진원은 지난달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사는 2002년 설립되어 20년 가까이 루프랙을 전문적으로 제조해 왔다. 현대차와 쌍용차의 1차 협력업체로 수년간 납품했으며, 제네시스 GV70과 GV80에도 적용될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반도체 공급난으로 완성차 업체의 생산량이 줄어든 탓에 자금 사정이 악화되며 부도가 났다. 

현대차 아이오닉5, 제네시스 G80의 브레이크 부품(캘리퍼)을 공급하는 한 자동차 부품사는 지난해 8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 절차에 돌입했고, 법원에 회생 신청을 했지만 회생 불가 판정을 받았다. 자동차금형을 생산해 온 또 다른 2차 부품사는 지난 4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1차 부품사가 무너지자 2차, 3차 부품사들도 도미노 피해를 입고 있다. 진원에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납품해 온 한 2차 부품사는 진원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부품대금을 받지 못해 추가 대출을 통해 간신히 버텼다. 


전기차 부품업체로 라인 전환 등 변화 노력 필요하지만 현실의 벽 높아


국내 자동차 부품 업계는 2010년부터 호황을 겪었다. 5년 동안 업체 수는 1700개가 추가되었으며, 고용 인원은 10만 명이 증가했다. 하지만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가 크게 늘기 시작한 2016년부터 부품업계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업체 추정치에 따르면 10인 이상 고용된 자동차 부품 회사는 2020년 기준 총 8966개로, 고용 인원은 23만5000명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작년보다 22만 5000여 명으로 1만명이 줄었다. 2016년부터 살펴보면 지금까지 4만 명이 감소했고, 올해에는 더욱 큰 폭의 인원감소가 예상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업체들이란 점이다. 부품 업체 8966개 중 전기모터 등 미래차 부품 생산이 가능한 기업은 불과 210곳으로 전체의 2.3%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빠르게 전기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라인을 전환하는 등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구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업체 명진정밀은 3년 전부터 전기차 부품을 만들기 시작해 주문이 끊이질 않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다. 김기수 명전정밀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 안에 전기차 부품으로 생산라인을 모두 바꾸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전기차 부품업체로의 변신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전기차의 핵심은 전기모터와 같은 전장부품이다. 여기에는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는 만큼 부품 업체가 전장부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익의 일정액을 연구개발로 재투자해야 하는데 중소, 중견기업은 쉽지 않은 과제다. 제품 개발까지는 물론, 개발 후 수익이 나기까지 최소 3~5년이 걸리는 등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자동차산업연합회(KAIA)가 최근 열린 제21회 자동차산업발전포럼에서 발표한 '자동차 업계 경영 및 미래차 전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300개 응답기업 중 56.3%(169개사)는 미래차 분야에 진출하지 못했다. 미래차 대응계획을 세우지 못한 이유로는 현재 제품으로 대응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42.0%로 가장 많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응답도 27.8%나 됐다.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면 도산하는 부품사가 급격하게 늘어날 우려가 있으며, 이렇게 되면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정부가 연구개발 및 정책자금을 대기업들의 전기, 수소차 전환에 집중하고 있는데 중소 내연기관 부품업체들의 전기차 부품업체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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